1873년 12월 25일에 柳基鎬가 자신과 숙부 및 집안의 근황을 전하면서, 삼발의 소학공부, 섬촌의 신행, 정육의 제사 및 용담 어른과의 약속과 관련된 소식을 巖後 李晩慤에게 보낸 편지
1873년 12월 25일에 柳基鎬가 巖後 李晩慤에게 보낸 편지로, 자신과 숙부 및 집안의 근황을 전하면서, 삼발의 소학공부, 섬촌의 신행, 정육의 제사 및 용담 어른과의 약속과 관련된 소식을 담았다.
요즈음 경전을 보며 조리하는 생활이 어떠한지 물으면서 여러 가지 약물로 충분히 원기를 도왔으리라 여겨 축하를 하고, 아들과 조카 및 집안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감기를 앓느라 고생하나. 숙부께서 건강을 잃지 않았고, 上村도 편안하다고 근황을 전하면서, 三發은 충건하고 수업을 받아 어려운 『소학』의 글 뜻을 해설하여 더욱 기특하다고 하였다. 剡村의 신행이 결정되었으나 형편이 주선하기가 어렵고, 正六의 제사가 열흘 앞으로 다가와 그리움이 간절하며, 용담 어른과의 모임 약속은 늦봄으로 약속을 물렸으나 자신은 병 때문에 반드시 가기 어렵다는 소식 등을 아울러 전했다.
발신자 류기호(1823~1886)는 全州人으로 자는 鞏甫, 호는 石隱이며, 定齋 柳致明의 문인이다. 어려서 經典과 諸子百家에 열중하고 성장하여 가학을 계승, 성리학을 專心하여 宗中과 士林의 추앙을 받았다. 1871년 嶺南疏首로 대원군의 서원훼철을 반대하다가 강원도 金化에 유배되고 다시 평안도 宣川에 移配되었다. 『客日隨錄』 4권2책을 비롯하여 文集 6권3책이 전한다.
1차 작성자 : 정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