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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이만각(李晩慤)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1+KSM-XF.1871.0000-20090831.00842570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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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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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만각
작성시기 1871
형태사항 크기: 34.5 X 43.5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도산 진성이씨 초초암종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71년 이만각(李晩慤) 서간(書簡)
1871년 5월 17일 이만각이 소호에 보낸 편지이다. 여러 차례 만나지 못한 서운함과 아픈 상대방을 걱정하는 마음을 전하였다. 금계에서 만나길 바랐지만 계획이 잘못되어 뜻을 이루지 못한 안타까움을 알렸다. 권대연의 죽음, 이문직과의 일, 악회(岳會)에서 만나지 못한 점, 소론(疏論)의 대처 방법과 소초(疏草)의 작성에 관한 일 등을 전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순주

상세정보

1871년 5월 17일 重外弟 李晩慤이 여러 차례 만나지 못한 서운함과 근황을 전하면서 疏論의 대처 방법과 疏草의 작성에 관한 의견을 疏戶에 보낸 편지
1871년 5월 17일 重外弟 李晩慤이 疏戶에 보낸 편지로, 여러 차례 만나지 못한 서운함과 근황을 전하면서 疏論의 대처 방법과 疏草의 작성에 관한 의견을 개진하는 내용이다.
이미 西寺와 혹 北峽에서 해후하지 못하고 酉谷海底에서 한 차례 만날 기회를 잃은 서운함을 전하고, 상대의 병과 축관으로서 겪어야 할 근심을 걱정하여 잠시 공부를 쉴 것을 권유하였다. 자신은 지난번 금계의 일로 仲賢과의 쌓인 회포를 펴려 했고, 저들의 편지가 있어서 한번 만날 기회일 것 같았으나 모임 장소에 가서야 계획이 잘못된 것을 알고 간 것을 후회했으며, 다시 금계에 들러서 사나흘을 머물며 만나기를 바랐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과정을 알렸다. 돌아와 연연[權大淵]이 죽은 것을 듣고 장례 전에 영결하려고 병을 무릅쓰고 가서 각 마을의 쌓이고 막힌 인사를 닦느라 여러 날을 보냈다고 알렸다. 정촌[李文稷]옹의 꾸짖음은 걸상을 맞대고 이야기할 때와 다름이 없으니 한 번 나무라는 것이 좋겠으며, 岳會에서 만나지 못한 점에 대한 걱정과 疏論의 대처 방법과 疏草의 작성에 관한 의견을 개진하였다. 끝으로 손자의 일과 ○翁의 죽음에 대한 소회를 적고 끝인사를 붙여 마무리 하였다.
1차 작성자 : 정재구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71년 이만각(李晩慤) 서간(書簡)

疏戶 令座下 下執事。

旣失西寺攀晤。倘得北峽解后。畢竟俱不諧。顧殘弊之
無分於新鄕。玉朝貴者乃如此。悵然奉還。奉讀案上
留翰。又知曾有意於一會。又復惘然有失。正如建元天
子。就從海上歸漫發。庶幾遇之之歎也。謹審毒熱。
令體經履。從欠健快。尙不至如拙病之沈綿。視官之患。正所
慮仰。而耽思權且休開卷。未必非向裏用工之節度。況已透出
來麥嶺一關。從前口無入物之歎。可休歇得一二朔。吾輩殘
年喫飯。聊可相借賀者耶。重外弟。向來金溪之役。爲抒仲
賢積懷。兼有彼中簡喩。似是一會之期。爲及到會所。不免
一番失圖。殊悔一步之妄進。且所借乘暮於遣還。更尋
留遲三五日。又庶有望於令旆之追至。非有優閒之暇。如
村翁所嘖薄也。歸聞淵淵方入地。此又三年不一論者。欲及其未
厚土。而遂一訣。更力疾一動。歷修各村積滯人事。又不覺費了
多日。非爲康健所使。如靜村翁之所玩弄也。靜村翁之誚。似
無關於令座。而聯榻交口。諒無差殊。故聊更發之。可更交
口一罵也。岳會斳動。何敢以爲非也。只當場失晤。可恨。所以發
恨語。以致勤喩。然吾兩間。豈或生疑於一動足之間哉。或恐不
知者之從傍竊議。遂帶累於令座也。疏論遠近聲勢如
彼。而末梢事未可知。第當處之於不勸不阻之間。至如疏草
之構。亦恐被人致疑。聊以塞責。而備知未徹。猶且爲之。豈非無
心之念耶。所以無甚肯綮。第索覽于此姪。如何。北峽之行。何以
且罷也。令抱祥獜。殊亦悵失矣。見其大病後頗玉成。可羨
可羨。◘翁竟入厚地。吾輩日悶。奈何奈何。紙窄只此。不備。伏惟
令照。謹拜謝上。
辛未 五月 十七日。重外弟 李晩慤 再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