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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김진림(金鎭林)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1+KSM-XF.1870.4717-20090831.00332570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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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진림, 이성호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70
형태사항 크기: 30.5 X 45.5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덕 인량 재령이씨 충효당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70년 김진림(金鎭林) 서간(書簡)
1870년 1월 13일에 김진림이 사위 이성호에게 보낸 것이다. 이틀 뒤 15일에 맞이하는 사돈 이현발의 환갑을 축하하면서 자신의 건강이 좋지 못하기 때문에 잔치에 참석할 수 없는 사정을 전하고 있다. 아들이라도 대신 보내려 했더니 말도 없어서 그조차도 어렵다며 매우 미안해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1차 작성자 : 최은주

상세정보

1870년 1월 13일, 김진림이 사돈 이현발의 환갑을 축하하면서 참석하기 어려운 사정을 전달하기 위해 사위 이성호에게 보낸 편지
1870년(철종6) 1월 13일에 金鎭林이 사돈 李鉉發의 환갑을 축하하기 위해 사위인 영덕 翼洞李性浩에게 보낸 편지이다. 김진림(1802-1886)은 호가 浪皤, 자가 士恒, 본관이 의성으로, 생부는 東園 金羲壽이다. 안동에 거주하였으며, 부호군을 받았고, 시집이 있다. 이현발(1810-1884)은 호가 藥坡, 자가 台應, 본관이 재령으로, 李壽一의 아들이자 雲嶽 李涵(1544-1632)의 주손이다. 壽職으로 통정대부 부호군을 받았고, 유집이 있다. 이현발의 장자인 李性浩(1839-1923)가 김진림의 둘째딸인 義城金氏 金又嬌와 혼인했다.
첫머리는 새해 정월 초에 사돈의 환갑이 곧 닥쳤는데, 건강은 괜찮으신지 안부인사로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미 장수의 기쁨이 지극한 데 거기다가 새 며느리까지 맞았으니 더욱 기쁘겠다며 축하의 마음을 전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은 손자를 본 이후로 근력이 좀 좋아지는 기미가 있어 이제껏 앓던 잡병들에 연연해하지 않고 환갑을 축하하는 잔치에 반드시 참석하려 했다는 마음을 적었다. 그렇지만 끝내는 약간의 구애가 있어 그 곳까지 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미안한 마음을 밝혔다. 자신이 못 가는 대신 아들이라도 보내려고 했는데 그 조차 말이 없어 실행하지 못하니 너무 한스럽다고 하였다.
李壽瀅(1837-1908)이 쓴 「藥坡李公墓碣銘」에 의하면 이현발은 아버지 이수일과 繼妃 寧海申氏 사이에서 1810년(庚午) 1월 15일에 태어났다고 한다. 이로 보아 김진림이 이 편지를 보낸 1월 13일은 그의 환갑 이틀 전이었음을 알 수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1차 작성자 : 최은주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70년 김진림(金鎭林) 서간(書簡)

翼洞冊室。賀狀。

新年。
春頭花甲載回。竊惟。
壽體益膺難老矣。趨庭彩
舞已極歡樂。而況又新婦入門。添
得一箇奇慶者乎。多賀多賀。老拙。見
孫以後。筋力隱然。有更少之漸。從
來小小雜祟擧。而委之於曠
漠之濱。大擬晉參於
壽筵之末。畢竟以若干拘碍
未遂焉。窮措大一飽喫。其亦有
數存焉者耶。欲替送兒豚。且
乏掛脚板而停之。可恨可恨。仲款
家層候僅僅依度。而不欲細瑣於賀
狀之末。餘萬姑竢早晏間相對可悉。不具式。
庚子元月十三。婦翁 金鎭林 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