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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 이만각(李晩慤)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1+KSM-XF.1868.4717-20090831.00842570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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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만각, 이돈우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68
형태사항 크기: 39 X 39.5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도산 진성이씨 초초암종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68년 이만각(李晩慤) 서간(書簡)
1868년 5월 8일 이만각이돈우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만각은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건강과 학문하는 재미를 전하였다. 또 소론(疏論)과 여강서원의 단자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전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순주

상세정보

1868년 5월 8일 李晩慤이 肯庵 李敦禹에게, 疏論과 여강서원의 단자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편지
1868년 5월 8일 李晩慤이 肯庵 李敦禹에게, 疏論과 여강서원의 단자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편지이다.
편지를 받고 매우 번거로워 답장을 못한 점을 사과하며 조용히 경전을 읽는 생활이 어떠한지 물은 뒤, 입춘 이후 세 번이나 감기에 걸려 고생을 하였으며 공부에는 존양의 맛이 없고 自衛에는 섭리의 공이 없으니 어찌 노쇠하지 않겠느냐고 하였다. 이어서 疏論과 여강서원의 단자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였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관련 자료와 함께 연구할 필요가 있다.
발신자 이만각의 본관은 眞寶, 자는 謹休, 호는 愼庵·巖后로 退溪 李滉의 11세손이다. 1865년 直指使 朴珪壽의 추천으로 繕工監假監役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일찍이 榮利의 뜻을 버리고 경전과 『朱子書節要』를 깊이 연구하면서 후진 양성에 전력하였으며, 문집으로 『愼庵集』 10권 5책이 전해지고 있다. 수신자 이돈우의 본관은 韓山, 자는 始能, 호는 肯庵으로 大山 李象靖의 현손이다. 1850년 문과에 급제하여 承文院正字를 거쳐 刑曹參議吏曹參判에 이르렀으며, 저서로 『肯庵集』이 있다.
1차 작성자 : 김순주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68년 이만각(李晩慤) 서간(書簡)

肯菴 經座下 回納。
巖溪 重外弟 謹謝書。
悲愁困苦之日。願一書讀。苦無甚干事。而每
得吾文兄問字。輒覺一番蘇快。此其故
何也。是又當何如其爲感也。第彼時擾甚。竟失
趂修謝敬。遠想傾嚮之餘。當不免爲之失圖
也。一月曾無三日晴。殊怪雨澤頻仍。而却
無甚爲功也。伏惟此際。
靜居經體事。一向沖衛。
亞庭氣候。連衛萬重。阻聞無多。瞻仰有切。重外
弟。入春以來。三經毒冒。每經每如爭三五年氣
力。朱子所歎。人生幾許三五年者。還可反隅而知
所懼耳。䀶使杜門習靜。堅持安樂。祖師之戒。
豈遽違是。而吾輩從前。欠却此一段。所以工夫
則無存養之味。自衛則闕變理之功。外內俱病。
幾何不老而衰乎。如文兄所患。當不在此限。而
承論深以爲恨。至誓不作。閒漫出入。豈亦病我
之爲然。而故以是誓之耶。當思所以改塗自勉。而
最是切摯。間弔死問疾。闕不去處。未知當如何耳。大氐省可多
少閒事。訒可多少閒話。方可望有進。旣非但出入爲妨事。幸相與
勉焉可乎。疏論今已作此聲勢。只有驀直向前。爲目前道理。
然却少可粹然一出於正者。此拙者所以每欲縮手。而不樂與之相
上下也。且因有所貢愚者。向來崔台之以深處。欲求以調停也。未省
文兄之如何答去。而想必以全嶺義理。非可以寂廖之言。有以節制
爲辭旣然矣。則凡於通論。往來儒林。聚議不妨。少訒其出。而黙溪
之通。靑城之會。皆謂自吾兄主管。頗有以爲之咎者。未知兄亦旋覺其
必不爾耶。非謂兄於此事。遂欲其撓手閉肩。不與之相關也。其於答彼應
此之間。須有一箇正當義理。不相齟齬者。以吾兄之明。豈不念之及此。而願欲
添日下之燈。還覺僭且忘也。廬院投單。謂之輕遽。亦無不可所揚分量。病
有難罇冒。故不得無一言引義。而諸處題意。
旣不彼期。又何必摎守前見耶。目今處身之道。
如此其艱險。安得不甘於討靜耶。多言害道。
只此不備。伏惟下照。謹拜謝候書。
戊辰 扐月 八日。重外弟 李晩慤 拜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