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1867년 이만각(李晩慤)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1+KSM-XF.1867.4717-20090831.008425700095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만각, 송인각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67
형태사항 크기: 31 X 102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도산 진성이씨 초초암종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67년 이만각(李晩慤) 서간(書簡)
1867년 8월 27일에 이만각송인각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만각은 누이와 딸을 잃은 슬픔과 지식 모으기 등 자신의 근황을 알렸다. 그리고 별지에 물은 내용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전하고 이진상과 논쟁한 사단칠정에 대한 조목별 분변을 뒤에 보내겠다는 뜻을 전해 달라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순주

상세정보

1867년 8월 27일에 李晩慤이 별지에 물은 내용에 대한 자신의 논지를 개진하면서, 이진상과 논쟁한 사단칠정에 대한 조목별 분변을 뒤에 보내겠다는 뜻을 전해 달라는 부탁으로 宋寅慤에게 보낸 편지
1867년 8월 27일에 李晩慤宋寅慤에게 보낸 편지로, 별지에 물은 내용에 대한 자신의 논지를 개진하면서, 이진상과 논쟁한 사단칠정에 대한 조목별 분변을 뒤에 보내겠다는 뜻을 전해 달라는 부탁을 담았다.
먼저 윤군이 멀리 와서 편지를 받은데 대한 감사를 전하고, 모시고 지내면서 程文의 어지러움을 물리치고 본원의 공부에 힘쓰는 것을 축하하였다. 자신은 누이와 딸을 잃고 눈물을 이기지 못하겠으나 감히 스스로 放廢하지는 않아, 사방으로 출입하며 지식을 모으기를 그만두지 않으나 끝내 알려짐은 없고, 자신에고 공부하러온 이들도 종유하는 즐거움이 없다고 근황을 전했다. 별지에서 물은 것은 의리가 정밀한 부분으로 감히 갑자기 스스로 논단할 수 없거늘 하물며 보내온 설은 이미 도산[李滉]호상[李象靖]의 뜻에 어긋나지 않으나, 다만 李汝雷[李震相]를 변박하기 위하여 자신의 설을 기다리나 자신 또한 어찌 감히 이것을 벗어나 말할 것이 있겠느냐고 하였다. 이어서 보내온 논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면서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끝으로 이 형과는 전에 사단칠정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조목별 분변은 이미 답설을 갖추었으나 수응이 심하고 게을러 정사하여 질정을 구하지 못했으나 뒤에 베껴 보내겠다는 뜻을 전해달라는 부탁을 하면서 마무리 하였다.
수신자 송인각(1827~1892)의 본관은 冶城, 자는 楚叟. 호는 遽庵이다. 류치명장복추의 문인으로 학행이 넓고 효제가 깊었다. 이여뢰이진상(1818~1886)으로 본관은 星山, 호는 寒州, 자가 여뢰이다. 조선시대 도학의 전통을 객관적 입장에서 분석, 수렴한 뒤 주리론의 종지를 논리적으로 재구성했다는 평을 듣는다.
1차 작성자 : 정재구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67년 이만각(李晩慤) 서간(書簡)

商山 侍棣座 下執事。

省式。春初一書。不記有無修復。第切向風
馳戀。益不以自已悲楚。而有所忘歇也。
胤君遠來。兼荷更惠手黙。欲與之上下名
理。又深感誦。謹審凉候。
堂圍節宣。一向衛重。
侍餘友履。連得淸裕。謝却程文之撓。益懋
本原之工。更賀其尋向淸凉境界中也。從
姪必知有例苦。而亦不至煩惟憂也。第服人不
友不慈。哭姊喪女。邇來情景。淚亦不勝。爲之
墜矣。尙不敢遂自放廢。略知餘景之爲可惜。
舊業之不可抛。而從前無涵養之工。可侍以爲
操存之功。所以舊愈忘而新有昧。出入四方。
貯聚不去。其終止於無聞而已。遠近少友之曾
所往來者。都被工令家引去。未有從遊之樂。
亦緣自我無及人之益也。愧歎愧歎。胤友適來。
相尋不妨挽而止之。以爲早暮相講之地。而薄寒
單着。不相與謀。此爾送去。殊以缺恨也。別紙
俯詢。此是義理精微處。不敢遽自論斷。況
來說已有不悖於陶山湖上之旨。而只爲李汝雷
辨駁。欲待鄙說。而爲自信之地。鄙亦豈敢外此。
而更有所云之耶。大抵湖上定訓。兩下立說八字。
打開如彼。其周遍精切。慮其認理。爲死物者。
而有前六段之訂。慮其有無位眞人。閃爍自在
之失。而有後七段之證文意。停當義理該暢。後承
之未有權度者。只得據以誦說。以自附於守經信
古之義。此盖從來拙法之更移易不得者也。且吾
輩初學之所當汲汲誦習。而服行者。尙有多少欠
闕。只一直從無刑影。無據守處。把作一餉淡
辯之資。則程先生所警揀難底問之訓。不專在
於當日也。區區此說。非所以相與於思辨之工。而其
於先後緩急之序。有不可紊者。僣易及之。未知
以爲如何。餘不相燕越。且以語李兄也。李兄曾與
有四七之爭。其所條卞。謹已草具答說。而年來應
酬浩劇。且苦頹懶。無以淨寫求正。想亦懣然遲
之矣。竢後寫出當送呈。對問竝致此意。如何。兒
憂適熏心。臨紙草草。不備。伏惟
棣照。謹拜謝狀上。
丁卯 八月 二十七日。弟服人 李晩慤 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