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7년 8월 27일에 李晩慤이 별지에 물은 내용에 대한 자신의 논지를 개진하면서, 이진상과 논쟁한 사단칠정에 대한 조목별 분변을 뒤에 보내겠다는 뜻을 전해 달라는 부탁으로 宋寅慤에게 보낸 편지
1867년 8월 27일에 李晩慤이 宋寅慤에게 보낸 편지로, 별지에 물은 내용에 대한 자신의 논지를 개진하면서, 이진상과 논쟁한 사단칠정에 대한 조목별 분변을 뒤에 보내겠다는 뜻을 전해 달라는 부탁을 담았다.
먼저 윤군이 멀리 와서 편지를 받은데 대한 감사를 전하고, 모시고 지내면서 程文의 어지러움을 물리치고 본원의 공부에 힘쓰는 것을 축하하였다. 자신은 누이와 딸을 잃고 눈물을 이기지 못하겠으나 감히 스스로 放廢하지는 않아, 사방으로 출입하며 지식을 모으기를 그만두지 않으나 끝내 알려짐은 없고, 자신에고 공부하러온 이들도 종유하는 즐거움이 없다고 근황을 전했다. 별지에서 물은 것은 의리가 정밀한 부분으로 감히 갑자기 스스로 논단할 수 없거늘 하물며 보내온 설은 이미 도산[李滉]과 호상[李象靖]의 뜻에 어긋나지 않으나, 다만 李汝雷[李震相]를 변박하기 위하여 자신의 설을 기다리나 자신 또한 어찌 감히 이것을 벗어나 말할 것이 있겠느냐고 하였다. 이어서 보내온 논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면서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끝으로 이 형과는 전에 사단칠정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조목별 분변은 이미 답설을 갖추었으나 수응이 심하고 게을러 정사하여 질정을 구하지 못했으나 뒤에 베껴 보내겠다는 뜻을 전해달라는 부탁을 하면서 마무리 하였다.
수신자 송인각(1827~1892)의 본관은 冶城, 자는 楚叟. 호는 遽庵이다. 류치명과 장복추의 문인으로 학행이 넓고 효제가 깊었다. 이여뢰는 이진상(1818~1886)으로 본관은 星山, 호는 寒州, 자가 여뢰이다. 조선시대 도학의 전통을 객관적 입장에서 분석, 수렴한 뒤 주리론의 종지를 논리적으로 재구성했다는 평을 듣는다.
1차 작성자 : 정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