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7년 9월 15일, 李海鷹이 근간에 한 묘지를 점유해서 면례할 날짜를 다음달 16일로 정한 것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1867년 9월 15일, 李海鷹이 근간에 한 묘지를 점유해서 면례할 날짜를 다음달 16일로 정한 것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우선 매우 오랫동안 연락이 끊어진 가운데 만년의 그리운 마음을 어떻게 이루 다할 수 있겠느냐고 물으면서 시작하였다. 이어 곧 가을이 깊어가는 때에 형제들의 재미난 안부가 연달아 좋고, 집안 식구들은 차례로 고루 마땅한지 물었고 玄伯이 문득 고인이 되었으니, 늙고 쇠한 나이로 서로 의지한 정은 슬픔을 아마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물었다.
이어 자신은 그 인간 세상을 살펴보니 또한 따분함을 깨달았으나 요사이 또 현손까지 보고 앉아서 인간 세대가 바뀌는 것을 보니, 절로 괴이하고 절로 가련하다고 하였다. 오직 바라는 것은 각 촌에서는 우선 다른 연고가 없는 것이나 종대부 四止窩 부군의 묘소가 허물어진 근심을 면하지 못하였으니 移奉의 계획은 몇 년이 되었는데 근간에 비로소 한 묘지를 점유해서 면례할 날짜를 다음달 16일로 정했다고 하였다.
끝으로 우리 종가의 법도 있는 가문이 쇠하고 패한지 오래되었다고 하면서, 옛날 선대 부형의 학덕은 그 만에 하나라도 기억할 수 없으나 오직 우리 문중에서는 사지와 공이 그 종손이라 칭할 만하나 친족과 화목하고 종친들을 다스리는 풍도가 당신의 형제분들도 반드시 평소에 들은 바가 있고 여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었던 것이라고 하였다. 우리 영해파 대종에서 전을 드리고 음식을 권하는 예가 없을 수 없다면서 李鉉發은 統宗의 정의이니, 반드시 이러한 도리에서 환하게 알 것이라고 하면서 혹시 늙은이의 말이지만 관심 있게 보살피는 것이 어떠냐고 하였다.
발급인 이해응(1783~1871)은 자는 楊叟, 호는 江棲, 본관은 載寧이고, 아버지는 宇均이고, 海益의 막내 동생이다. 제자서를 두루 섭렵하였으며, 성리전서를 깊이 탐독하여 안으로 수양하고 밖으로 실천하였다. 安東座首를 지냈다. 저서로는 『江棲集』이 전한다. 한편 李鉉發(1810~1884)은 자가 台應, 호는 藥坡, 본관은 載寧이다. 아버지는 壽一이다. 첨지중추부사를 제수 받았으며, 유고가 전한다. 사지와는 李馨遠(1701∼1778)으로, 자는 景郁, 호는 四止窩이고, 본관은 載寧이다. 6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慈母의 교훈을 받으면서 독학 하였다. 효성이 지극했고 가난을 구제하였으며 文詞와 筆法이 뛰어났다. 安東座首를 역임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선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