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6년 4월 10일, 이상환 외 4인이 익동의 사람들에게 어떠한 일의 비용과 관련된 일을 상의하기 위해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66년 4월 10일, 이상환 외 4인이 익동의 사람들에게 돈 처리와 관련된 일을 상의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편지의 첫머리에서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있다. 지난번 상대방을 찾아뵙고 좋은 시간을 보냈는데 이렇게 떨어져 있으니 그리움이 간절하며 상대방과 무원, 그리고 마을의 사람들도 모두 무사히 지내고 있는지 물어보고 있다. 이어서 자신들은 병으로 칩거하다가 간신히 고개를 넘어 집으로 돌아와서 다행스러우나 심한 가뭄으로 소란함이 심해 걱정이 많다고 하고 있다. 또한 서울에서 시험을 치렀는데 거기에 합격한 사람이 도외에 한 사람도 없어 실망이 크고 권지재의 문집에 대한 일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것을 주도하고 있는 자들이 무슨 마음을 먹고 그 일을 시행했는지 모르겠다고 하고 있다. 끝으로 어떠한 일을 처리하는데 쓰이는 비용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번에 어떤 일을 시행하면서 겨우 마련한 비용을 다 쓰게 되었으며 동파의 사람들도 적게 참여하게 되었으니 걱정이 많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한 냥을 덜어 동파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 어떠하겠냐고 하며 편지를 마친다.
발급인은 석포에 살고 있는 재령이씨 들이다. 석포는 오늘날 경상북도 영양 석보이다. 석포에는 재령이씨의 집성촌인 두들마을이 있다. 李相彦(1800~1881)의 자는 穉健이고 아버지는 李光默이며 후에 절충장군 행용양위에 임명된다. 李心燦(1798~1874)의 자는 士彦이며 형인 惟于堂 李箕燦과 함께 당대 문장가로 유명하였다. 李相瑾(1807~1870)의 자는 子瑜이고 아버지는 李海龜이다. 李相桓의 자는 敬仲이고 경주김씨, 전주류씨와 혼인을 하였다. 李相琮(1801~1885)의 자는 殷弼이고 初名은 相琮이며 후에 李相逵으로 개명한다. 恩典을 받아 후에 崇政大夫에 임명된다.
편지를 보낸 익동은 현재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이다. 재령이씨 입향조인 李璦가 翼洞이라 하였다가 李玄逸이 飛溪谷으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이 편지는 가문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논의를 하고 일을 처리했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간접자료이다. 비록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가문에 일을 처리하기 위해 서로 상의를 하여 일을 처리하고자 많은 노력을 들인 것이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1차 작성자 : 김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