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1866년 이상환(李相桓) 외 4인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1+KSM-XF.1866.4776-20090831.003325700048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상환, 이상언, 이심찬, 이상종, 이상근
작성지역 경상북도 영양군 석보면
작성시기 1866
형태사항 크기: 28 X 33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덕 인량 재령이씨 충효당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66년 이상환(李相桓) 외 4인 서간(書簡)
1866년 4월 10일, 이상환 외 4명이 익동의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가뭄으로 소란이 심하고 서울에서 치른 시험에 도외에 합격한 사람이 없으며 권지재 문집으로 곤욕을 치르는 일 등을 전하고 있다. 이어서 일을 처리한 후 비용에 대한 문제를 어찌 해결할 것인가를 묻고 한 냥을 덜어 동파사람들을 참여 시키자고 제의하고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1차 작성자 : 김인호

상세정보

1866년 4월 10일, 이상환 외 4인이 익동의 사람들에게 어떠한 일의 비용과 관련된 일을 상의하기 위해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866년 4월 10일, 이상환 외 4인이 익동의 사람들에게 돈 처리와 관련된 일을 상의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편지의 첫머리에서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있다. 지난번 상대방을 찾아뵙고 좋은 시간을 보냈는데 이렇게 떨어져 있으니 그리움이 간절하며 상대방과 무원, 그리고 마을의 사람들도 모두 무사히 지내고 있는지 물어보고 있다. 이어서 자신들은 병으로 칩거하다가 간신히 고개를 넘어 집으로 돌아와서 다행스러우나 심한 가뭄으로 소란함이 심해 걱정이 많다고 하고 있다. 또한 서울에서 시험을 치렀는데 거기에 합격한 사람이 도외에 한 사람도 없어 실망이 크고 권지재의 문집에 대한 일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것을 주도하고 있는 자들이 무슨 마음을 먹고 그 일을 시행했는지 모르겠다고 하고 있다. 끝으로 어떠한 일을 처리하는데 쓰이는 비용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번에 어떤 일을 시행하면서 겨우 마련한 비용을 다 쓰게 되었으며 동파의 사람들도 적게 참여하게 되었으니 걱정이 많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한 냥을 덜어 동파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 어떠하겠냐고 하며 편지를 마친다.
발급인은 석포에 살고 있는 재령이씨 들이다. 석포는 오늘날 경상북도 영양 석보이다. 석포에는 재령이씨의 집성촌인 두들마을이 있다. 李相彦(1800~1881)의 자는 穉健이고 아버지는 李光默이며 후에 절충장군 행용양위에 임명된다. 李心燦(1798~1874)의 자는 士彦이며 형인 惟于堂 李箕燦과 함께 당대 문장가로 유명하였다. 李相瑾(1807~1870)의 자는 子瑜이고 아버지는 李海龜이다. 李相桓의 자는 敬仲이고 경주김씨, 전주류씨와 혼인을 하였다. 李相琮(1801~1885)의 자는 殷弼이고 初名은 相琮이며 후에 李相逵으로 개명한다. 恩典을 받아 후에 崇政大夫에 임명된다.
편지를 보낸 익동은 현재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이다. 재령이씨 입향조인 李璦翼洞이라 하였다가 李玄逸飛溪谷으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이 편지는 가문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논의를 하고 일을 처리했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간접자료이다. 비록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가문에 일을 처리하기 위해 서로 상의를 하여 일을 처리하고자 많은 노력을 들인 것이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1차 작성자 : 김인호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66년 이상환(李相桓) 외 4인 서간(書簡)

翼洞 僉案 入納。
石浦族末候書。

數晝夜聯榻敍情。豈不誠吾輩
殘年一勝事耶。分張各歸。仍復
愴黯。有不盡底懷。況其間有不及團
圓者乎。儘覺不可窮盡不可完全者。
人之情緖與會事也。更未惟
僉履用。莫無撼之餘憊。懋元
節。能無有觸冒所傷。邨裡一齊
安依否。旋切溸慕不已。族等。間關歸
狀。無足追說。而以若病蟄。辦得筇屣
踰嶺之役。已覺自幸耳。旱騷一
甚。熬熬爻象。日不勝凜慽。奈何。
者。稍稍見還。而十許優選。無及
於都外一人。殊失遐邇聳抃之望
也。權之載遺集。入。其說漸的。果
爾則其用意詖險。將何所包藏也。在
我。旣無臨衝之備。每有受侮之狀。
只自憤歎憤歎。今番支費。率爾一擧
逋此夥然。旋覺不安。果從何處劃了
也。分以昨秋所畫之物。歸語在家數老。咸一
辭持之。盖其零星原數。纔劃旋費。有
非做去本意。且東坡少一之歎。終覺欠缺
無已。則該所所謂斗草者。其數不爲不給
於此費矣。以此專出似不必
靳之。且除一兩錢。派及于
東坡三數老亦是一美事。
未知僉意。當無異同
耶。餘萬。不宣。惟
僉照在。
丙寅 四月 旬。族末 相桓 相彦 心燦 相琮 相瑾 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