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5년 12월 27일, 이덕영이 상대방에게 문제를 일으킨 부자를 처벌해 줄 것을 촉구하기 위해 보낸 편지.
1865년 12월 27일, 李德榮이 상대방에게 문제를 일으킨 父子를 처벌해 줄 것을 촉구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편지에서 먼저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있다. 해가 바뀌어 가는데 상대방에 대한 그리움이 커져가며 연말 추위에 상대방의 어머니와 형제들, 그리고 주위 사람들도 잘 지내고 있는지 물어보고 있다. 이어서 자신은 구차하게 살아가고 있으며 伯父의 상사가 며칠 안 남아서 애통함을 느낀다고 하였다. 이어서 본격적으로 상대방에게 전달할 내용을 적고 있다. 상암의 돈을 거두는 일은 미루어지다가 이제 거두에 보냈는데 이 일은 상중에 있는 자신이 할 일이 아니었으나 다른 사람들이 관심이 없어 자신이 떠맡게 되었다고 하고 있다. 또한 지난번에 발생한 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데 다시 문제를 일으킨 父子의 죄를 처벌해 줄 것을 바랐으나 인량에서 아무런 소식이 없으니 당신께서 사람을 보내 父子를 잡아와 처벌해 줄 것을 간청하고 있다. 끝으로 인사를 하고 추록에 상암의 돈 26兩을 드리니 회답해 달라고 하며 편지를 마친다.
발급인인 李德榮(1835~1896)은 자는 士潤, 호는 忍窩, 본관은 載寧이다. 생부는 李相實이고 李相垕의 양자로 들어가게 된다. 이 편지에서 故里에서 문제를 일으킨 父子를 처벌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故里는 현재 영덕 창수면 인량리를 의미하며 이곳에는 재령이씨 영해파가 거주하는 곳이다. 재령이씨 영해파 종가인 운악종가를 충효당이라 하는데 갈암 이현일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이 편지는 한 가문에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어떻게 중론을 형성하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지를 간접적으로 살펴 볼 수 있다. 또한 분파되어 서로 다른 지역에서 멀리 떨어져 지내지만 같은 가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계속적으로 서로 교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편지는 마을사나 미시사 분야, 특히 민속학 방면으로도 가치가 있는 문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1차 작성자 : 김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