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5년 4월 초 8일, 김호수 · 김진곤 · 김긍락이 잠암선생께서 시호를 받은 것을 축하하러 가지 못하여 대신 젊은이 한 명을 보낸다는 편지.
1865년 4월 초 8일 金祜壽 · 金鎭坤 · 金肯洛이 潛庵先生께서 시호를 받은 것을 축하하러 가지 못하여 대신 젊은이 한 명을 보낸다는 편지이다.
편지의 첫 머리에서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선대 잠암선생께서 시호를 내려 받은 은전에 대해 말하였다. 여러 해 만에 받은 명으로 사림이 기뻐하고 여러 집사들에게 감사하고 축하드린다고 하였다. 발급자는 外裔로 연고지일에 일제히 나아가 축하하는 것이 마땅하나 각각 늙고 병이 들어 함께 뜻을 이룰 수 없어 젊은이 한 명을 보내어 그 책임을 메우려고 하니 매우 부끄럽다고 하였다. 끝으로 대례를 잘 치르고, 여러분들의 체리가 위중하셔서 자신들의 마음에 부응해 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추록으로 돈 1민을 올린다고 하였다.
金義貞(1495~1547)의 본관은 豊山이고, 자는 公直, 호는 潛庵이다. 1516년(중종 11) 사마시에 입격하고 1526년(중종 21)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弘文館正字 · 修撰 · 正言 · 世子侍講院 · 司書訓鍊院副正 · 宗簿寺僉正 등을 지내고 吏曹判書로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潛庵逸稿』가 있다.
본관이 義城인 발신자 金祜壽(1842~?)의 자는 汝搆이고, 金鎭坤(1787~1868)의 자는 德元이며, 金肯洛(?~1870)의 자는 穉受이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1차 작성자 : 김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