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4년 3월 초 6일 姻弟 金奭洛(1821~1895)이 안부와 迷兒의 관례 후 인사를 닦지 못할 수 있음을 忠孝堂 棣座下께 전하는 편지.
1864년 3월 초 6일 姻弟 金奭洛(1821~1895)이 안부와 迷兒의 관례 후 인사를 닦지 못할 수 있음을 忠孝堂 棣座下께 전하는 편지이다.
김석락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상대방과 그의 가족들에 대한 안부를 묻고 자신의 상황을 전하였다. 어머님의 건강이 좋지 않고, 이웃 마을에 역병이 돌아 숨죽이며 지내던 날이 서너달이 되었다고 하였다. 가족들에게 드러난 탈은 없지만 龜山의 안부가 막혀 답답하다고 하였다.
김석락은 국가의 일은 근심이 되기도 하고 복이 되기도 한다고 하였다. 또한 초정에 이따금 들을만한 소식이 있으니 生靈의 좋은 때가 이로부터 다시 돌아오지 않겠냐고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국가의 일은 편지에 상세히 적히지 않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편지의 작성 년도로 시대 상황을 보면, 1863년 12월 철종이 죽고 고종이 왕위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조선팔도는 민란과 국가 재정의 고갈로 매우 혼란하였다. 흥성대원군은 섭정을 하여 세도정치로 실추된 왕권을 강화하고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노력을 하였는데 이러한 것들을 말하는 것 같다.
迷兒가 관례를 치른 후 인사를 할 행차가 있지만 여러 가지 일과 탈것이 없어 뜻을 이루지 못한다며 편지에 서글픈 마음을 나타내었다. 나머지 사연은 佳山으로 가는 내행 인편을 통해 쓴다고 전하며 편지를 마쳤다.
발신자 김석락은 본관이 義城이고 자는 敬輔, 호는 靜窩이다. 아버지는 金鎭泳이고 생부는 金鎭健이다.
1차 작성자 : 김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