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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김석락(金奭洛)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1+KSM-XF.1864.4717-20090831.00332570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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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석락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64
형태사항 크기: 28.5 X 36.5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덕 인량 재령이씨 충효당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64년 김석락(金奭洛) 서간(書簡)
1864년 3월 6일 인제 김석락(金奭洛)이 충효당(忠孝堂)에 보낸 편지이다. 김석락은 상대방에게 자신의 안부와 미아(迷兒)의 관례(겨우 갓을 쓰게 된 나이) 후 여러 가지 일과 탈것이 없어 찾아뵙지 못한다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순주

상세정보

1864년 3월 초 6일 姻弟 金奭洛(1821~1895)이 안부와 迷兒의 관례 후 인사를 닦지 못할 수 있음을 忠孝堂 棣座下께 전하는 편지.
1864년 3월 초 6일 姻弟 金奭洛(1821~1895)이 안부와 迷兒의 관례 후 인사를 닦지 못할 수 있음을 忠孝堂 棣座下께 전하는 편지이다.
김석락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상대방과 그의 가족들에 대한 안부를 묻고 자신의 상황을 전하였다. 어머님의 건강이 좋지 않고, 이웃 마을에 역병이 돌아 숨죽이며 지내던 날이 서너달이 되었다고 하였다. 가족들에게 드러난 탈은 없지만 龜山의 안부가 막혀 답답하다고 하였다.
김석락은 국가의 일은 근심이 되기도 하고 복이 되기도 한다고 하였다. 또한 초정에 이따금 들을만한 소식이 있으니 生靈의 좋은 때가 이로부터 다시 돌아오지 않겠냐고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국가의 일은 편지에 상세히 적히지 않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편지의 작성 년도로 시대 상황을 보면, 1863년 12월 철종이 죽고 고종이 왕위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조선팔도는 민란과 국가 재정의 고갈로 매우 혼란하였다. 흥성대원군은 섭정을 하여 세도정치로 실추된 왕권을 강화하고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노력을 하였는데 이러한 것들을 말하는 것 같다.
迷兒가 관례를 치른 후 인사를 할 행차가 있지만 여러 가지 일과 탈것이 없어 뜻을 이루지 못한다며 편지에 서글픈 마음을 나타내었다. 나머지 사연은 佳山으로 가는 내행 인편을 통해 쓴다고 전하며 편지를 마쳤다.
발신자 김석락은 본관이 義城이고 자는 敬輔, 호는 靜窩이다. 아버지는 金鎭泳이고 생부는 金鎭健이다.
1차 작성자 : 김순주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64년 김석락(金奭洛) 서간(書簡)

忠孝堂 棣座下 入納 謹封。

不面。猶或例也。而次面之資。又從而無憑。
有時起懷。不覺浥浥。以僕之心。而可以仰揣。吾
座下之思。一般矣。謹候春晩。
靜棣動止一享湛衛。子舍內外侍節若
大小家都節。倂皆平吉否。遠爲傾遡
不任區區。姻弟。偏侍。長事懔惙。煎迫中
沴氣過隣。屛息度了者數三朔矣。今纔
有淸平之漸。而餘戒尙未已。日用憂悶。惟諸
眷。無見■。而龜山安信乍阻。爲鬱耳。
國家事。惟恤惟休。且初政。往往有足於聽
聞者。生靈好會。自此復回耶。一進之事
心非不足。迷兒。勝冠之後。合有候謁止行。而
不但事故相掣。且坐無騎。有
志未就。何時可得擺脫。以破此無聊之心也。
臨紙。尤覺悵然。餘。因佳山內行
便。暫此不備。伏惟棣照。
甲子 三月 初六日。姻弟 金奭洛 拜拜。

川前姻弟。謹拜候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