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4년 1월 12일 柳騏文이 재령이씨 충효당의 李 生員 형제들에게 보낸 편지.
1864년 1월 12일 柳騏文이 재령이씨 충효당의 李生員 형제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지의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편지와 만남이 끊어진지 몇 년이 흘러 그리운 회포는 피차 마찬가지일 것인데, 형제분들의 조용히 수양하는 가운데 생활은 새해를 맞이하여 편안하고 자제분들의 배움도 새해를 맞이하여 새로운지 물었다. 류기문 형제는 예전처럼 지내고 아이들도 별탈이 없어 다행이라는 안부를 전했다.
이 생원의 선조 雲嶽 李涵(1554~1632)의 문집 간행이 몇백년 동안 미루어 오던 중 간행되어 斯文의 다행이라고 했다. 본인은 일을 시작할 때 가서 참석해야 했지만 병이 생겨 성의를 다하지 못해 비록 시간이 많이 지나도 한탄스러움이 심하다고 전하면서 『雲嶽集』 한질을 받아보길 바란다고 하였다.
류기문 집안의 유집도 수백년동안 간행하지 못하다가 지난 가을 활자로 100여질 간행하여 반질했지만 태반이 부족했는데, 이는 물력이 넉넉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상대방의 각 문중에 우선 넉넉하게 보내 드려야 하지만 책이 부족하여 단지 4~5곳에만 보내게 되어 매우 죄송하다고 하였다.
발급자 류기문(1804~1864)의 자는 景見, 호는 歸來齋, 본관은 전주이다. 안동 임동 水谷에 거주하였다. 재령이씨 충효당은 영해의 仁良里에 위치한다. 李璦(1480~1561)를 입향조로 한다. 그의 손자 이함의 자는 養元, 호는 雲嶽이다. 1588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1600년 문과 합격자 명단에 있었으나 답안지 가운데 장자에서 인용한 말이 있다고 하여 곧 삭제 당하였다. 의금부 도사, 의령 현감 등을 역임했다. 이함의 손자 葛庵 李玄逸이 이조 판서가 되어, 이함은 이조 참판에 증직되었다. 재령이씨 충효당은 퇴계학을 가학으로 계승하는 가운데 영남의 명문이 되었다. 『운악집』은 1862년 주손 李鉉發이 앞장서서 간행하였다.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12
『조선시대 간찰 서식 연구』, 김효경,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1차 작성자 : 김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