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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류기문(柳騏文)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1+KSM-XF.1864.0000-20090831.00332570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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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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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류기문, 이○○
작성시기 1864
형태사항 크기: 32 X 31.9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덕 인량 재령이씨 충효당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64년 류기문(柳騏文) 서간(書簡)
1864년 1월 12일, 류기문이 재령이씨 충효당의 이 생원 형제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류기문은 상대방의 선조 운악 이함의 문집 간행을 축하하는 동시에 한질 받아보길 희망했다. 류기문 집안에서도 수백년 만에 문집 100여질을 간행하여 반질했지만 부족하여 상대방의 문중마다 넉넉하게 드리지 못하고 4~5곳에만 보낼 수밖에 없어 죄송하다고 하였다.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12
『조선시대 간찰 서식 연구』, 김효경,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1차 작성자 : 김명자

상세정보

1864년 1월 12일 柳騏文이 재령이씨 충효당의 李 生員 형제들에게 보낸 편지.
1864년 1월 12일 柳騏文이 재령이씨 충효당의 李生員 형제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지의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편지와 만남이 끊어진지 몇 년이 흘러 그리운 회포는 피차 마찬가지일 것인데, 형제분들의 조용히 수양하는 가운데 생활은 새해를 맞이하여 편안하고 자제분들의 배움도 새해를 맞이하여 새로운지 물었다. 류기문 형제는 예전처럼 지내고 아이들도 별탈이 없어 다행이라는 안부를 전했다.
이 생원의 선조 雲嶽 李涵(1554~1632)의 문집 간행이 몇백년 동안 미루어 오던 중 간행되어 斯文의 다행이라고 했다. 본인은 일을 시작할 때 가서 참석해야 했지만 병이 생겨 성의를 다하지 못해 비록 시간이 많이 지나도 한탄스러움이 심하다고 전하면서 『雲嶽集』 한질을 받아보길 바란다고 하였다.
류기문 집안의 유집도 수백년동안 간행하지 못하다가 지난 가을 활자로 100여질 간행하여 반질했지만 태반이 부족했는데, 이는 물력이 넉넉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상대방의 각 문중에 우선 넉넉하게 보내 드려야 하지만 책이 부족하여 단지 4~5곳에만 보내게 되어 매우 죄송하다고 하였다.
발급자 류기문(1804~1864)의 자는 景見, 호는 歸來齋, 본관은 전주이다. 안동 임동 水谷에 거주하였다. 재령이씨 충효당은 영해仁良里에 위치한다. 李璦(1480~1561)를 입향조로 한다. 그의 손자 이함의 자는 養元, 호는 雲嶽이다. 1588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1600년 문과 합격자 명단에 있었으나 답안지 가운데 장자에서 인용한 말이 있다고 하여 곧 삭제 당하였다. 의금부 도사, 의령 현감 등을 역임했다. 이함의 손자 葛庵 李玄逸이조 판서가 되어, 이함이조 참판에 증직되었다. 재령이씨 충효당은 퇴계학을 가학으로 계승하는 가운데 영남의 명문이 되었다. 『운악집』은 1862년 주손 李鉉發이 앞장서서 간행하였다.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12
『조선시대 간찰 서식 연구』, 김효경,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1차 작성자 : 김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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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864년 류기문(柳騏文) 서간(書簡)

李生員 棣座前。
國哀。普痛。書面之阻。已經數年。瞻詠之懷想。彼
此一般。謹未審除玆履端。
靜養棣履。迓新萬重。子舍侍學與歲俱新
耶。仰遡區區無任。騏文。兄弟。謹依前狀。而兒少
輩亦無見。故私幸。伏聞。令先祖
雲巖先生文集。數百年未遑之餘。始得刊印。實
爲私文之幸。弟。當私往參見於始事之日。而適値薪
憂。未遂誠意。雖已過時。伏恨卽深矣。景仰之至。妄
有一帙奉覽之意。或可惠及耶。鄙家亦有未
刊遺集。實爲數有年遺恨。前秋始以活字。
印出百餘帙。而及其印布之除。太半不足。此是物
力不贍之故。到此雖恨歎。奈何。
貴鄕各門中。當優爲齎送。而卷
帙不足。只送四五處。不覺罪悚。
餘忙不備。伏

尊照。謹候狀。
甲子 元月 十二日。季弟 柳騏文 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