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3년 10월 28일 李鉉發이 마을에 전염병이 돌았고, 농사가 잘 되지 않아 원망스러우며, 鋪史官이 책을 간행한 고을을 순행하여 민폐를 끼쳤다는 내용 등을 적어 영해 재령이씨의 이 생원에게 보낸 편지.
1863년 10월 28일 李鉉發이 마을에 전염병이 돌았고, 농사가 잘 되지 않아 원망스러우며, 鋪史官이 책을 간행한 고을을 순행하여 민폐를 끼쳤다는 내용 등을 적어 영해 재령이씨의 이 생원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지는 먼저 인사로 시작된다. 상대방이 여름과 가을 이래로 심부름꾼을 보내 안부를 물어왔으나 아직 답장을 아직 보내지 못한 것은 연이은 일 때문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태만과 게으름 때문이라고 겸손하게 말을 전했다. 이어 상대방, 상대방의 숙부, 집안의 모든 식구들 및 딸아이 내외의 안부도 차례로 편안한지 물으며 그리움 마음을 전했다.
이어 본인의 안부를 적었다. 몇 년 동안 좋지 않던 몸이 가을 들어 매우 심해져 한 달여 동안 앓다가 지금은 조금 괜찮아졌다고 했다. 마을의 가족들이 차례로 전염병에 걸렸는데, 재종매씨는 결국 병이 다 나았다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경계해야 할 이들이 매우 많다고 했다. 농사는 원망스러운 처지인데, 상대방의 농장은 이러한 처지를 면했는지 물었다. 鋪史官이 책을 간행한 고을을 순행했는데, 이러한 일은 일찍이 없던 민폐라고 했다.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는 본인은 몸을 지탱하기 어렵지만 한탄한들 어찌하겠느냐고 하면서 상대방은 순리에 따라 생활을 잘 보전하시길 바란다는 인사를 하면서 끝맺었다.
발신인 이현발(1810~1884)은 재령 이씨 14세로 淸溪公派의 종손이다. 字는 台應이고, 號는 藥坡이며, 부인은 大興白氏이다. 가선대부 첨중추부사에 제수되었으며, 유집 3권이 전한다. 그는 雲嶽 李涵(1554~1632)의 11대손으로 『雲嶽集』의 간행에 앞장섰는데, 金垈鎭에게 발문을 받아 1861년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이 편지의 수신인은 이 생원으로, 미상이지만 재령이씨 충효당의 인물이다. '충효당'은 운악종택의 당호이다. 충효당은 석계 이시명, 갈암 이현일, 밀암 이재 등 3대에 걸쳐 퇴계학맥을 잇는 대학자를 배출함에 따라 영남 명문가의 반열에 올랐다. 현재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 위치한다.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12
『조선시대 간찰 서식 연구』, 김효경,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1차 작성자 : 김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