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2년 9월 9일, 石川 會中의 李光羽 외 6인이 상대의 안부를 묻고 上旬 墓祀에 대해 의논하고자 宗堂에 보낸 편지
1862년 9월 9일에 石川 會中의 李光羽 외 6인이 상대의 안부를 묻고 上旬 墓祀에 대해 의논하고자 宗堂에 보낸 연명편지이다.
가을이 깊어가는 이때에 형제들과 즐겁게 지내야 할 시기이지만 각기 흩어져 지내는 상황이어서 유감이라고 했다. 이어서 상대와 집안 및 촌내의 안부를 묻고, 安溪宅의 장례도 吉地를 정했는지 물었다. 자신들의 근황으로는 각기 별 탈 없이 지내고 있고, 士實의 집안에 혼례가 있는 날이어서 집안의 노소들이 모두 모였다고 하였다. 그래서 옛 말에 혼사는 '不賀'해야 하는 禮가 있다 하더라도 축하할 만한 일이었다고 언급하였다.
上旬이 머지않기에 묘사를 지낼 방도를 헤아려야 함을 언급하면서, 여러 사람들이 모두 이달 그믐이나 다음 달 초순 상간에 준비하여 시행하여도 무방하다는 의견이 있었음을 알리고는 상대의 의견도 물었다. 또 漢上측이 매해 말에 이르러서야 묘사를 치르는 것은 간혹 편치 못한 부분이 있는데, 하물며 宗君이 있는 三洞측도 분주한 뒤 끝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다고 하였다. 영남 밖의 有司들이 독자적으로 거행하는 것도 함께 조상을 높이는 도리가 아니라고 하였다. 따라서 올해는 두 곳의 유사들이 일제히 모여 함께 준비하고, 종손도 온갖 바쁜 일을 물리치고 제사에 참석하는 것이 여러 종실 친척들의 바람이라고 하였다.
발급자들은 모두 재령 이씨 문중의 인물들로 영양에 거주하였다. 이광우(1789~?)는 자는 聖瑞이다. 李相運(1781~1864)은 자는 穉亨, 호는 石坡이며, 호군공파 存齋 李徽逸의 후손이다. 李相顯(1800~1872)은 자는 文淑이며, 석계공파 平齋 李隆逸의 후손이다. 李相翕(1798~1859)은 자는 穉和이며, 석계공파 葛菴 李玄逸의 후손이다. 李相彦(1800~1881)은 자는 穉健이며, 折衝將軍行龍驤衛에 제수된 이력이 있고, 석계공파 恒齋 李嵩逸의 후손이다. 李箕燦(1795~1863)은 자는 孟燁, 호는 惟于堂이며, 부친은 相度이다. 본문에 언급된 士實은 李秀榮의 자이다. 이수영(1809~1892)은 호는 左海이고, 부친은 李相宇이며, 恒齋 李崇逸의 7세손이다.
1차 작성자 : 김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