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2년 2월 17일에 李晩慤이 현윤을 얻은 기쁨과 장래의 교육에 대한 당부를 하면서, 학문하는 방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高山에 보낸 편지
1862년 2월 17일에 李晩慤이 高山에 보낸 편지로, 현윤을 얻은 기쁨과 장래의 교육에 대한 당부를 하면서, 학문하는 방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개진하고 있다.
자당께서 건강하고 부모님을 모시는 형제들도 잘 지낸다고 생각하며 늘 그리워한다고 첫 인사를 하였다. 이어 자신은 현윤을 만나 서로 어울리며 비록 서로 講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타고난 자질이 함께 공부할만하고 원대한 뜻이 있어 보배를 얻은 것과 다르지 않으니 덕문에서 받은 은혜가 크다고 하였다. 다만 마을에 전염병이 발생하여 오래 머물 수 없어 보냈으나 가고 머무는 정은 멀지 않은 것 같은데, 가정에서 교육할 때 더욱 바로잡아 다스려 중책을 맡게 한다면 私家에 광영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仲氏는 근래 무슨 책을 읽는지 궁금해 하면서 학문은 오로지 독서에만 있지 않으니 심신을 점검하여 잠심하고 완미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으니, 그렇게 하면 자득하여 스스로 즐거움이 있을 것이나 마주 앉아 물어 볼 수 없는 것이 한스럽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大平에서 아직 산소를 정하지 못한 것을 걱정하면서 끝인사를 붙여 마무리 하였다.
발신자 이만각(1815∼1874)의 본관은 眞寶, 자는 謹休, 호는 愼庵과 巖后로 退溪 李滉의 11세손이다. 1865년 直指使 朴珪壽의 추천으로 繕工監假監役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일찍이 榮利의 뜻을 버리고 경전과 『朱子書節要』를 깊이 연구하면서 후진 양성에 전력하였으며, 문집으로 『愼庵集』 10권 5책이 전해지고 있다.
1차 작성자 : 정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