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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이만각(李晩慤)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1+KSM-XF.1862.4717-20090831.008425700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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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만각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62
형태사항 크기: 23 X 63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도산 진성이씨 초초암종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62년 이만각(李晩慤) 서간(書簡)
1862년 2월 17일에 이만각이 고산에 보낸 편지이다. 자신은 학문을 하는데 현윤을 만나 덕문에 받은 은혜가 크다고 하였다. 중씨(仲氏)의 독서를 궁금해 하며 심신을 잘 보살펴야 학문하는 즐거움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대평(大平)에서 아직 산소를 정하지 못해 걱정이라고 전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순주

상세정보

1862년 2월 17일에 李晩慤이 현윤을 얻은 기쁨과 장래의 교육에 대한 당부를 하면서, 학문하는 방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高山에 보낸 편지
1862년 2월 17일에 李晩慤이 高山에 보낸 편지로, 현윤을 얻은 기쁨과 장래의 교육에 대한 당부를 하면서, 학문하는 방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개진하고 있다.
자당께서 건강하고 부모님을 모시는 형제들도 잘 지낸다고 생각하며 늘 그리워한다고 첫 인사를 하였다. 이어 자신은 현윤을 만나 서로 어울리며 비록 서로 講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타고난 자질이 함께 공부할만하고 원대한 뜻이 있어 보배를 얻은 것과 다르지 않으니 덕문에서 받은 은혜가 크다고 하였다. 다만 마을에 전염병이 발생하여 오래 머물 수 없어 보냈으나 가고 머무는 정은 멀지 않은 것 같은데, 가정에서 교육할 때 더욱 바로잡아 다스려 중책을 맡게 한다면 私家에 광영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仲氏는 근래 무슨 책을 읽는지 궁금해 하면서 학문은 오로지 독서에만 있지 않으니 심신을 점검하여 잠심하고 완미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으니, 그렇게 하면 자득하여 스스로 즐거움이 있을 것이나 마주 앉아 물어 볼 수 없는 것이 한스럽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大平에서 아직 산소를 정하지 못한 것을 걱정하면서 끝인사를 붙여 마무리 하였다.
발신자 이만각(1815∼1874)의 본관은 眞寶, 자는 謹休, 호는 愼庵과 巖后로 退溪 李滉의 11세손이다. 1865년 直指使 朴珪壽의 추천으로 繕工監假監役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일찍이 榮利의 뜻을 버리고 경전과 『朱子書節要』를 깊이 연구하면서 후진 양성에 전력하였으며, 문집으로 『愼庵集』 10권 5책이 전해지고 있다.
1차 작성자 : 정재구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62년 이만각(李晩慤) 서간(書簡)

高山 經侍座 棣執事。

稱人之善。而必本其父兄。矧乎
其愛之者乎。所以日間瞻想而
慕悅之者。尤不任憧憧也。伏惟
番風。尊闈鼎茵。連得神護。
侍餘友床經體。一例珍嗇。嚮
風馳戀。未嘗不日夕也。服弟幸
爾遣元。而得賢胤相守。雖無
甚相講。而謂其資性之可與共
學。其有以寄意遠大者。有
如得珍寶而有異焉。盖受
賜於德門大矣。但閭警迭發。
難以久留。玆不免割捨以送。
去留之情。似不相遠矣。須於
過庭之際。益加繩督。俾有以大
受焉。則其有光於私家者。益
長遠矣。
賢仲氏近讀何書。爲學不專
在讀書。然撿攝身心。擺除外
誘。無愈對案潛玩。想有所
見得而自樂者矣。恨無由促席
款叩也。大平尙未占山。而各散處。
無以被力。尤爲苦慟耳。餘
在續候。不備。伏惟
棣下照。謹拜手候書。
壬戌 二月 十七日。服弟 李晩慤。拜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