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0년 2월 13일, 金道明이 여식의 혼인할 곳을 아직 정하지 못하였는데, 형에게 가까운 시기에 오셔서 의논하여 강의를 보내주고 다음 달을 기약하여 혼례를 성사시킴이 어떻겠냐고 물어보기 위해 긍구당에 보낸 편지
1860년 2월 13일, 金道明이 여식의 혼인할 곳을 아직 정하지 못하였는데, 형에게 가까운 시기에 오셔서 의논하여 강의를 보내주고 다음 달을 기약하여 혼례를 성사시킴이 어떻겠냐고 물어보기 위해서 보낸 편지이다.
서두에는 이별의 서운함은 아마도 응당 당신과 매한가지일 것이라고 하면서 상대방과 당신의 아들 및 大老의 안부를 물었다. 높고 높은 三達이 엄연하게 쇠한 세상의 빛이 되어서 과연 이미 우리 당의 후생이 의지하고 우러러 보는 바탕이 있으니 또 어찌 사문의 복이 아니겠냐고 하였다. 여기서 삼달은 천하를 통하여 어떤 시대에나 존중되는 세 가지로 곧 官爵과 年齒와 學德을 말한다. 이어서 자신의 안부를 전하는데, 형제들과 연달아 감기로 괴로워하고 있다고 하면서 자신의 약한 체질을 한탄해하였다.
여식의 혼인할 곳이라고 말한 데는 비록 많지만 아직 확정을 못하였으니 어느 곳으로 할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과연 월하노인의 좋은 인연이 있어서 그러한가보다고 하였다. 오천에 안주인이 없다고 하는 데는 비록 이 한 흠이 있지만 그 밖의 모든 것은 과연 형 등이 지도하여 가르친다면 또한 잘 어울린다고 말할 것이라 하면서 하물며 서로 믿고 서로 아낌이 내형과 같이 하는데 아우가 어찌 감히 따라듣지 않을 수 있겠냐고 하였다. 이어 가까운 시기에 오셔서 의논하여 강의를 보내주시고 다음 달을 기약하여 혼례를 성사시킴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발급인 김도명(1803~1873)은 자가 純伯, 호는 畏庵이다. 본관은 光山이다. 柳尋春의 문인이고, 柳台佐‧李漢膺‧李彙寧‧柳致明‧柳疇睦 등과 교유하였다. 여씨향약에 의거하여 풍속을 후하게 하고 기강을 바로 잡기에 주력하였다. 저서로는 『畏庵集』이 전한다.
1차 작성자 : 김선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