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0년 4월 15일에 李泰淳이 자신과 가족들의 근황 및 遠村 족숙과 경백 집안의 소식을 상대방에게 전하는 편지
1830년 4월 15일에 李泰淳이 범들[虎坪, 봉화 해저]에 거주하는 상대방에게, 자신과 가족들의 근황 및 遠村 족숙과 경백 집안의 소식을 전하는 편지이다.
고향 마을의 전염병이 사라지고 서울 가마도 도착한다고 하는데 동요하는 가운데의 생활에 정신도 수고로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가족들이 편안하고 마침내 뒤에 웃게 되었으니 평소보다 배나 위안이 되고 마음이 놓인다고 첫인사를 하였다. 자신은 예전처럼 쇠로한 모습으로 지내고, 또 맏이의 병이 뿌리가 있어 사람을 걱정하게 하지만, 손녀가 보호를 받아 그럭저럭 지내는 것이 다행일 뿐이라고 근황을 전했다. 원촌의 족숙 형제는 옮겨 우거한지 며칠 되었는데 이곳저곳을 다니다 우리 마을에 同堂이 합석하여 밤낮으로 웃으며 이야기 하니 위안이 되나, 景伯 집의 뜻밖의 거듭된 슬픔은 어찌 이런 일이 있느냐고 한탄하였다. 마지막으로 상대방 손자의 공부에 대해서 묻고, 자기 손자의 근황을 전하면서 끝인사를 붙여 마무리 하였다.
발신자 이태순의 본관은 眞寶, 자는 來卿으로 李秉遠, 姜橒道 등과 교유하였다. 1783년 생원이 되고, 1801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등제한 뒤, 1806년 2월 行 홍문록에 올랐다. 1810년 장령이 되었을 때 正士習, 禁奢侈, 擇司牧, 恤民瘼의 시무4조의 소를 올려 왕으로부터 가납을 받기도 하였다. 1718년 丁若鏞의 邪學之寃을 疏論하였으나 윤허를 받지 못하였고, 1823년 대사간의 지위에 올랐다. 특히, 선조의 유훈을 지켜 지나친 욕심을 삼갔고, 관직은 참판에까지 올랐다.
1차 작성자 : 정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