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9년 12월 24일에 李泰淳이 자신과 종형 및 景寬 李彦淳 영감의 근황을 所湖에 전하는 편지
1829년 12월 24일에 李泰淳이 所湖에 자신과 종형 및 景寬 李彦淳 영감의 근황을 전하는 편지이다.
세모에 사람을 그리는 정은 평소의 배나 되는데 눈 내리는 추위에 형제의 연구가 날로 취미가 있고, 집안도 편안하리라 생각하니 그리움과 위안이 교대로 모인다고 하면서, 자신은 예전처럼 늙은 모습으로 지내 말할 만한 재미가 없다고 하였다. 王世孫冊禮가 지난달에 행해져 나라의 끝없는 복은 어디나 같은데, 노폐한 늙은이는 축하하는 반열에 참석하기에 부족하지만 송구한 마음은 남에게 뒤지지 않으며, 종형은 추위를 겁내고 기침을 하느라 예전 같지 않다고 근황을 전했다. 각자 늙어 가는데 사는 곳도 서로 떨어져 자리를 같이할 수 없으니 탄식한들 어쩌겠느냐고 안타까워하면서, 이언순 영감은 이미 지방관으로 나갔고 또 증손까지 안았으니 이른바 양주학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사람이 아니겠느냐고 은근히 부러워하였다. 마지막으로 백씨와 중씨의 안부를 물으면서 끝 인사를 붙여 마무리하였다.
이언순(1740~1812)은 李滉의 후손으로 1804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修撰, 應敎 등을 거쳐 吏曹參判에 이르렀다. 1835년에는 謝恩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양주학은 인간이 바라는 소망을 모두 겸비하는 것을 말한다. 예전에 사람들이 모여서 각자 소원을 말하였는데, 한 사람은 많은 돈을 갖는 것이 소원이라 하였고, 한 사람은 鶴을 타고 하늘에 오르는 것이 소원이라 하였고, 한 사람은 楊州刺史가 되는 것이 소원이라 하자, 이를 듣고 있던 한 사람이 많은 돈을 허리에 차고서 학을 타고 양주 고을의 하늘을 날아오르는 것이 소원이라 했던 데서 나온 말이다.
1차 작성자 : 정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