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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7년 이태순(李泰淳)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1+KSM-XF.1827.4717-20090831.00842570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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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태순, 이병원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27
형태사항 크기: 31.5 X 35
장정: 낱장
수량: 2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도산 진성이씨 초초암종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27년 이태순(李泰淳) 서간(書簡)
1827년 4월 5일에 이태순이병원에게 보낸 편지이다.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알렸다. 제산의 서원 건립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전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순주

상세정보

1827년 4월 5일에 李泰淳이 제산의 서원 건립에 대한 자신의 의견를 李秉遠애에게 전하는 편지
1827년 4월 5일에 李泰淳李秉遠에게, 제산의 서원 건립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편지이다.
종이 돌아온 뒤 다시 소식이 막혀 답답한데 여러 형제들의 생활과 손자들의 안부가 어떠한지 물었다. 자신은 전처럼 지내지만 길을 다닌 피로가 아직 떨쳐내지 못하여 매우 걱정이며, 전의 독감은 나아지지만 날씨가 좋지 않아 심해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근황을 전했다. 이른바 한양 행차는 긴요하지 않고 일기도 청명하지 않으니 친구들이 집에 잘 돌아오는 것이 제일의 계책이 아니겠느냐고 하였다. 齊山의 일은 內龜 김 형을 통해 대강을 들었는데 臺를 옮길 곳이 기울고 좁지 않느냐고 궁금해 하였다. 반드시 충분히 생각한 데서 나왔겠지만 다시 강당을 이건하면 또 중역을 더하게 되니, 자신의 생각에는 우선 대를 먼저 세우고 세우지 못한 집은 廚所와 兩齋를 세운 뒤에 차례로 거행해도 늦지 않을 것이니 헤아려 시행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의견을 제시하였다. 성균관에 있을 때 水台와 한 번 걸음하기로 이야기가 있었는데, 5월 초순에 함께 오기로 약속한다면 저쪽의 편지를 기다려 물리고 늦출 계획이라고 하였다. 아우들에게 각각 편지를 쓰지 못하니 돌려 봐 달라는 부탁을 끝으로 마무리 하였다.
수신자인 이병원(1774∼1840)의 자는 愼可, 호는 所庵, 본관은 韓山으로 의 아들이다. 川沙 金宗德을 따라 배워 사서와 정주서에 전심하였고, 1801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815穆陵參奉을 거쳐 義禁府都事가 되고 淸河比安의 현감을 지냈다.
1차 작성자 : 정재구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27년 이태순(李泰淳) 서간(書簡)

淸河 仁閣 執事 入納。
下溪 服弟 候狀。省式謹封。
李淸河 經案 執事。
下溪 李弟 候狀。省式謹封。
奴還更阻。只切愴鬱。未審維夏。
棣牀僉起居。長第珍重。令孫侍餘做況
勝迪否。區區馳溸之至。弟昨狀。而路憊尙頹
臥不振。悶極悶極。第向來毒感。俱得向歇。而
風日一向不佳。能免更鴟之患否。所謂西行。
俱是不緊。聞齋之僧。能捲鉢休笻。靜坐不
動者。果幾人哉。還可笑也。旦日氣不淸明。
知舊諸勝。俱得好還家。則豈非第一策耶。
齊山始役凡節。俄因內龜金兄。細得梗槩。而更
占移臺。能無傾隘之歎耶。必出於十分商量之
地。而若復移建講堂。則當添一重役矣。鄙意
則姑捨是先建。未及建之室。以備廚所與兩齋
然後。次第擧行。尙未晩也。幸量爲
之。如何如何。在頖時。與水台語及一番
之行。而約與幷轡於午初間矣。當
竢彼中往復以爲進退計耳。
餘譬痛艱
候。不備萬一。
伯仲僉前。未
能各幅。輪
照如何。
丁亥 四月 初五日。弟 泰淳 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