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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5년 이좌순(李佐淳) 외 34인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1+KSM-XF.1825.4717-20090831.00842570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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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좌순, 이하순, 이손순, 이장순, 이현순, 김씨문중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25
형태사항 크기: 32 X 72
장정: 낱장
수량: 2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도산 진성이씨 초초암종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25년 이좌순(李佐淳) 외 34인 서간(書簡)
1825년 6월 13일에 이좌순 외 34인이 금계의 김씨문중에 보낸 편지이다. 이좌순 외 34인은 김진화가 상계에 보낸 편지에 그 곳 어른들의 휘함을 지척하여 부른 일에 대해 항의하였다. 금계 김씨문중의 대종으로써 타인의 모범이 되지 않고 오히려 좋지 않은 언동을 보인 것을 지적하며 이에 대한 답변을 요구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순주

상세정보

1825년 6월 13일에 李佐淳 외 34인이 金鎭華가 상계에 두 차례 편지를 쓰면서 그 곳 어른들의 휘함을 지척하여  부른 일에 대해 항의하면서 분명한 답변을 요구하기 위해 金溪의 金氏門中에 보낸 편지
1825년 6월 13일에 李佐淳 외 34인이 金溪의 金氏門中에 보낸 편지로, 金鎭華가 상계에 두 차례 편지를 쓰면서 그 곳 어른들의 휘함을 지척하여 부른 일에 대해 항의하면서 분명한 답변을 요구하는 내용이다.
선세의 이름을 기휘하는 법은 춘추시대로부터 시작되었고, 춘추의 의리는 복수보다 큰 것이 없다고 전제하면서 延豊公이 계시다면 진화가 남의 부형을 욕하기를 이토록 무엄하게 하겠느냐고 하였다. 귀문은 문충 공의 큰 집안이며 진화는 또한 귀문의 대종이므로 그 언모와 동지가 다른 사람과 마땅히 달라야 하는데도 諸父의 글에서 자세히 살피지 않고, 모든 연풍 공과 관계되는 사람에게 척의를 끊고 교분을 없애려 하였다고 잘못을 지적하였다. 이어 편지의 내용은 위조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팔순의 부형이 그의 구설에 올라 두 번이나 패악하게 전파된 것에 대하여 장차 자기들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겠는지 분명한 답변을 요구하였다.
口舌의 구체적인 내용은 관련 편지와 자료를 살펴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듯하다. 글 속의 연풍공은 연풍 현감을 지낸 金宗壽(1761~1813)로 金鎭華의 父이다. 자는 一老, 호는 聽松이며, 1792년 식년시 2등으로 생원에 합격하여 형조 좌랑과 연풍 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김진화(1793~1850)의 자는 聖觀, 坦窩이며 음사로 진산 군수와 능주 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1차 작성자 : 정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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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825년 이좌순(李佐淳) 외 34인 서간(書簡)

金溪 金氏門中 僉案 入納。
溪上 李生等 候狀。省式謹封。
伏惟潦炎。
僉動止晏重。鄙等運値陽九。不幸與鎭華竝世。僉君子想諒之矣。嗚呼。天下無
無名之人。無無父之子。人若斥己父之名而辱之。則將任之乎。將擧其父之名而答之乎。諱
法自春秋始。春秋之義。莫大於復讐。彼若以已不諱而無難斥呼。則其所以
對擧者。亦復讐中一事。吾夫子其將禁之乎。噫。彼鎭華作從天降從地出。
又作所爲氣化。有延豊公在。則雖以鎭華善反復之心。言之不可曰非其父
也。傳曰。老吾老以及人之老。其心若有延豊公。則其可以辱人之父。若是其無難乎。
鄙等雖無似。麤聞衛父兄之道。亦嘗聞鄒夫子是亦妄人之訓。彼旣不知延豊公。則
鄙等雖在衛父兄之地。當以鄒訓處之。而此有不然者。貴門是文忠公大家也。鎭華
又是貴門大宗也。居其宮而統其族。嵬然爲九世相傳之嫡。則其言貌也動止也。當
別異於人。而彼乃不審於諸父之書。凡係延豊公切戚世交。必欲甘心以後已。哀哉。
延豊公於渠何尤焉。初度書。鎭華之所手書。而夏淳之所袖來。則誠着僞字不得。又
將委他人不得。而喫㤼上司與史行。能以再度書。一邊眩惑人聽。一邊流播遠邇。延豊
雖臥於泉下。冥然漠然。而天倫之中。較諸上司與史行。爲何如也。宋人有父事實。似道
而蔑其親者。後來秉史筆者。書之曰。宋無春秋。延豊公若有知。當作何如懷也。
不知不有近出六字。有若討逆發啓之辭。渠必曰。如此則溪李更無保地云爾。而第觀
其言。無非渠所自當。鄙等亦有耳。嘗聞渠在論常則有可誅者三。在國事則
有可討者四。鄙等之執此爲說。豈不光明正大。而八耋父兄之騰。渠口舌重以悖低流
播者。自有內外輕重之分。渠之通天罪惡。姑俟後日。以其屛論中以下一轉語。質諸
僉賢。延豊公若無名則已。尙有死不朽之三字。不審僉賢將使鄙等何以處之也。
僉賢若以鄙等所質之事。問之鎭華。明示鄙等。則兩家三百年契誼。當始終曲全。而不然則
延豊公豈不悲哉。豈不憐哉。言不知裁。極爲主臣。不備禮。
乙酉 六月 十三日。 李佐淳 李夏淳 李巽淳 李長淳 李玄淳 李彙朝 李彙晩 李彙濟 李彙斌 李彙春 李彙大 李彙典 李彙輈 李彙{示+冕} 李彙鍵 李彙在 李彙存 李晩受 李晩義 李晩松 李晩遇 李晩器 李晩喜 李晩栢 李晩弼 李晩讓 李晩好 李晩敎 李晩和 李晩轍 李晩實 李晩儉 李晩圖 李中敏 李中振 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