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0년 4월 13일에 査弟 鄭灝가 내행을 위해 말과 가마를 보내면서 자신도 딸을 보기 위해 도동으로 가기 때문에 기다리지 못한다는 사정을 趙生員에게 알리는 편지.
1820년 4월 13일에 査弟 鄭灝가 내행을 위해 말과 가마를 보내면서 자신도 딸을 보기 위해 도동으로 가기 때문에 기다리지 못한다는 사정을 趙生員에게 알리는 편지이다.
인편이 다녀간 뒤 달이 바뀌었는데 복중의 생활이 좋고 가족들도 고루 편안한지 그리움을 이길 수 없다고 첫인사를 하였다. 자신은 큰일을 겪어 병과 피로가 더욱 심하며 나머지는 말할 것이 없다고 간략하게 근황을 전했다
내행을 맞고 보내는 수고로움은 매우 신경이 쓰이리라 생각되는데 비록 스스로 취한 것이지만 도리어 매우 염려가 된다고 하였다. 말 한 마리와 작은 가마를 보내는데 이것은 자기 집에서 여인네 행장을 꾸리는 예를 따른 것이라고 하면서 큰 가마를 보내는 것은 각자 스스로 힘을 쓸 뿐이지 자신이 알바가 아니라고 농담을 하였다. 지금 곧 데리고 오리라 생각하는데 의자를 쓸고 미리 기다려야 하지만 자신 또한 여식을 보기 위해 道洞으로 가려한다고 계획을 알렸다. 돌아오는 시기는 하루가 빠르거나 늦을 것 같은데 만약 이 시기를 놓치면 다시 여름과 가을 사이에는 몸을 뺄 여가가 없어 하는 수 없이 출발하지만 날짜가 적고 돌아오기 바빠 병자가 견딜 바가 아닌 것 같아 염려가 된다고 하면서 끝인사를 붙여 마무리 하였다.
발신자 정호(1759~1822)의 본관은 東萊, 자는 孟潤, 호는 肯齋이다. 칠곡에 거주하였으며 1783년 式年試 3등으로 생원에 합격하였다. 유고가 전한다.
『옛편지 낱말사전』, 하영휘, 돌베개, 2011.12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12
1차 작성자 : 정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