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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년 조건화(趙建和)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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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조건화
작성지역 경상북도 상주시
작성시기 1819
형태사항 크기: 33.7 X 47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상주 승곡 풍양조씨 입재공파종택 /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승곡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19년 조건화(趙建和) 서간(書簡)
1819년 윤4월 18일에 조건화평안도사에게 거듭 상을 당한 일에 대한 슬픈 감회를 전하고, 7품에서 4품 대부에 오른 것을 축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군거(君擧)와 무이 숙부가 연이어 돌아가신 일에 대해 슬픈 감회를 전하고, 상대방이 7품으로 벼슬을 시작하여 5~60일 사이에 4품대부가 된 것을 축하하였다. 이어서 객지 생활의 안부를 묻고 별묘의 봉안 소식을 비롯한 지신의 근황을 전하였다.
『옛편지 낱말사전』, 하영휘, 돌베개, 2011.12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12
1차 작성자 : 서진영

상세정보

1819년 윤4월 18일에 族從 趙建和가 君擧와 武夷 숙주의 상을 거듭 당한 일에 대해 슬픈 유감을 전하고, 7품에서 4품대부에 오른 것을 축하하며, 별묘의 봉안 소식과 자신의 근황을 평안도사에게 전하는 편지.
1819년 윤4월 18일에 族從 趙建和가 君擧와 武夷 숙주의 상을 거듭 당한 일에 대해 슬픈 유감을 전하고, 7품에서 4품대부에 오른 것을 축하하며, 별묘의 봉안 소식과 자신의 근황을 평안도사에게 전하는 편지이다.
수신자가 상경한 뒤 인사가 크게 어그러져 뜻밖에 君擧의 상에 곡을 하였는데 평생 志業을 이루지 못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단아한 조행과 바른 주장을 다시는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다며 애석해 하였다.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또 연천 숙주가 돌아기시니 하늘이 어진 사람을 장수하게 한다는 증험이 또 없으니 애통하다고 하였다. 자신은 부모를 여의고 依歸할 곳을 잃어 말이 여기에 이르면 뜨거운 눈물이 먼저 흘러내리니 멀리서 수신자를 향해 무슨 말로 위로를 하겠느냐고 하였다. 한 번 천리 길을 가서 내려오지 않고 두 곳의 부고가 갑자기 이르니 아픈 마음을 상상할 수 있는데, 비록 집에서 이런 변을 당해도 무너지고 아픈 마음이 끝이 없을 텐데 하물며 몸이 먼 곳에 있어서 한 장의 부고를 받고 와서 곡하지 못하는 자에게 있어서야 심정이 어떻겠느냐고 동정하였다. 흉화가 거듭 혹독하여 武夷 숙주가 이어서 돌아가시니 연세 높고 덕이 있는 분들의 자리가 모두 비게 되니 여러 자질들의 아프고 슬픈 마음이 어떻겠느냐고 하였다. 지난겨울에 이별한 뒤로 인사의 변역이 상전벽해와 같아 쏠리는 마음이 더욱 절실하여 때때로 景得 諸從과 말이 여기에 이르면 자신도 모르게 슬퍼진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한 가지 축하할 만한 것은 처음 7품으로 벼슬을 시작하여 상경한 5~60일 사이에 4품대부가 되었으니 다만 우리 그대의 재주와 명망이 넉넉할 뿐만 아니라 실로 끝없는 임금의 은혜를 입은 것이니 우리 종족의 경사스럽고 다행함이 어떻겠느냐고 하였다. 근래에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으로 반기며 기쁨이 작지 않았다고 하였다. 또 평안도로 이직하여 都事로 나간다고 하는데 오래 병조에 칩거하는 것 보다는 낫지만 서로 만날 길은 점점 멀어지니 도리어 서운하다고 하였다. 요즈음 날씨가 매우 더운데 객지에서의 건강은 어떠한지 몰라 그리우며, 어버이께서 평안한 날이 없고 자신도 더위에 괴로움을 당해 날마다 신음을 일삼는다고 근황을 전했다. 別廟의 일은 이미 마쳐 지난 18일에 봉안하였으니 우리 가문의 경사스럽고 다행함이 이보다 큰 것이 없지만 슬프고 서운한 마음은 둘 다 같을 것이니 다시 무슨 말을 하겠느냐고 하였다. 지난날 오가는 인편이 없어 위장을 써서 천리 떨어진 얼굴을 대신해야 하지만 소란스럽고 바빠서 지금까지 실행하지 못했다고 한스러워 하면서 탈 없이 임지에 도착하기 바란다는 말로 마무리 하였다.
8월의 과거 행차는 긴요하지 않다고 할 만하나 이 일로 한양을 영원히 이별하려 하나 말과 여러 도구를 아직 하나도 손에 넣지 못해 가소로우며, 대전 숙주의 뜻밖의 상은 매우 참혹하고 놀랍다는 추신이 붙어 있다.
발신자인 조건화(1747~?)는 본관이 豊壤, 자는 和叔이며 純祖 28년(1828) 식년시 진사에 합격하였다.
『옛편지 낱말사전』, 하영휘, 돌베개, 2011.12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12
1차 작성자 : 정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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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819년 조건화(趙建和) 서간(書簡)

平安都事。朞服弟。 ▣▣▣▣。
省式言。自尊上之後。人事大非。意外哭君擧之喪。
惜乎人也。平生志業之未遂。已不足言。而
雅操正論。不可復得於斯世。痛哉惜哉。曾未
數月。永川
叔主又捨世。天之仁壽。又何無驗。哀痛之懷。不
但親子侄爲然。吾以風樹餘生。又失佑歸
之地。言念及此。熱淚先注。遙向尊邊。何
辭以慰。一去千里。未卽下來。而兩度凶音遽
及之。情地之痛迫。從可以想得。雖在家而當
此變。摧痛之猶且罔極。况乎身在遠地。
但承一紙訃書而尙未得來哭者耶。此雖
勢所使然。痛恨尤極。其何以寬抑而自遣耶。凶禍
荐酷。武夷叔主。又繼而奄忽。先行齒德
之位盡空。諸子侄痛悼之懷。復如何哉。前
冬一別之後。中間人事之變易。便同海桑。而
馳想之懷益切。時與景得諸從。語及
那邊。自覺於悒。而別有一語可賀者。以初
入仕七品。上京五六旬間。作正四品大夫。不但吾
君之才望有裕。實荷天恩之罔極。吾宗
慶幸如何。近日聞有下來之報。心以爲拭靑。在卽爲
喜不些。又聞移職平安。以都事出去云。於
尊猶勝於久蟄兵曺。而相逢之路。自此漸遠。還覺
缺然。近日炎熱甚酷。不審
客中服履如何。尤不勝馳念之至。族從。兩庭親候。
雖無大端病患。而無全安時日。身亦爲暑所惱。日事
呻楚。其餘目外惱苦。不一以足。何足煩提也。
別廟役已垂畢。
頃於初六十八日
奉安。吾家慶幸。莫
大於是。而愴憾之懷。
尊我無間。復何言復何言。
向日不無轉轉來往之
便。事當卽修慰字
以替千里顔面。而每擾
且忙。至今未果。何
恨如之。惟冀
無擾到任。不宣式。
情照。狀上。
己卯 閏月 十八日。族從 建和 欠式。

八月觀光之行。可謂不緊之最。而欲因此永訣京
華之計。而鬣與凡具。尙無一者入手。旋可笑
也。大田叔主。以意外之
病。喪其女兒。▣▣
景色。慘愕慘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