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9년 윤4월 18일에 族從 趙建和가 君擧와 武夷 숙주의 상을 거듭 당한 일에 대해 슬픈 유감을 전하고, 7품에서 4품대부에 오른 것을 축하하며, 별묘의 봉안 소식과 자신의 근황을 평안도사에게 전하는 편지.
1819년 윤4월 18일에 族從 趙建和가 君擧와 武夷 숙주의 상을 거듭 당한 일에 대해 슬픈 유감을 전하고, 7품에서 4품대부에 오른 것을 축하하며, 별묘의 봉안 소식과 자신의 근황을 평안도사에게 전하는 편지이다.
수신자가 상경한 뒤 인사가 크게 어그러져 뜻밖에 君擧의 상에 곡을 하였는데 평생 志業을 이루지 못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단아한 조행과 바른 주장을 다시는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다며 애석해 하였다.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또 연천 숙주가 돌아기시니 하늘이 어진 사람을 장수하게 한다는 증험이 또 없으니 애통하다고 하였다. 자신은 부모를 여의고 依歸할 곳을 잃어 말이 여기에 이르면 뜨거운 눈물이 먼저 흘러내리니 멀리서 수신자를 향해 무슨 말로 위로를 하겠느냐고 하였다. 한 번 천리 길을 가서 내려오지 않고 두 곳의 부고가 갑자기 이르니 아픈 마음을 상상할 수 있는데, 비록 집에서 이런 변을 당해도 무너지고 아픈 마음이 끝이 없을 텐데 하물며 몸이 먼 곳에 있어서 한 장의 부고를 받고 와서 곡하지 못하는 자에게 있어서야 심정이 어떻겠느냐고 동정하였다. 흉화가 거듭 혹독하여 武夷 숙주가 이어서 돌아가시니 연세 높고 덕이 있는 분들의 자리가 모두 비게 되니 여러 자질들의 아프고 슬픈 마음이 어떻겠느냐고 하였다. 지난겨울에 이별한 뒤로 인사의 변역이 상전벽해와 같아 쏠리는 마음이 더욱 절실하여 때때로 景得 諸從과 말이 여기에 이르면 자신도 모르게 슬퍼진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한 가지 축하할 만한 것은 처음 7품으로 벼슬을 시작하여 상경한 5~60일 사이에 4품대부가 되었으니 다만 우리 그대의 재주와 명망이 넉넉할 뿐만 아니라 실로 끝없는 임금의 은혜를 입은 것이니 우리 종족의 경사스럽고 다행함이 어떻겠느냐고 하였다. 근래에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으로 반기며 기쁨이 작지 않았다고 하였다. 또 평안도로 이직하여 都事로 나간다고 하는데 오래 병조에 칩거하는 것 보다는 낫지만 서로 만날 길은 점점 멀어지니 도리어 서운하다고 하였다. 요즈음 날씨가 매우 더운데 객지에서의 건강은 어떠한지 몰라 그리우며, 어버이께서 평안한 날이 없고 자신도 더위에 괴로움을 당해 날마다 신음을 일삼는다고 근황을 전했다. 別廟의 일은 이미 마쳐 지난 18일에 봉안하였으니 우리 가문의 경사스럽고 다행함이 이보다 큰 것이 없지만 슬프고 서운한 마음은 둘 다 같을 것이니 다시 무슨 말을 하겠느냐고 하였다. 지난날 오가는 인편이 없어 위장을 써서 천리 떨어진 얼굴을 대신해야 하지만 소란스럽고 바빠서 지금까지 실행하지 못했다고 한스러워 하면서 탈 없이 임지에 도착하기 바란다는 말로 마무리 하였다.
8월의 과거 행차는 긴요하지 않다고 할 만하나 이 일로 한양을 영원히 이별하려 하나 말과 여러 도구를 아직 하나도 손에 넣지 못해 가소로우며, 대전 숙주의 뜻밖의 상은 매우 참혹하고 놀랍다는 추신이 붙어 있다.
발신자인 조건화(1747~?)는 본관이 豊壤, 자는 和叔이며 純祖 28년(1828) 식년시 진사에 합격하였다.
『옛편지 낱말사전』, 하영휘, 돌베개, 2011.12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12
1차 작성자 : 정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