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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년 강세륜(姜世綸)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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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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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강세륜, 이현발
작성지역 경상북도 상주시 신봉동
작성시기 1807
형태사항 크기: 34 X 39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덕 인량 재령이씨 충효당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07년 강세륜(姜世綸) 서간(書簡)
1807년 5월 11일, 강세륜이현발에게 『산곡집』을 빌리기 위해 쓴 편지이다. 중국 송나라 때 황정견의 시문집인 『산곡집』은 자신이 거주하던 고을에서 흔치않은 책이니 그 책을 혹시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또 어리석은 이가 됨을 알아 남에게 빌려주기를 기꺼워하지 않기 때문에 구구하게 보길 원하지만 얻을 수 없던 것이 여러 해가 지났다며 이에 높은 뜻을 받아 선반 위의 지극한 보배인 『산곡집』을 아끼지 않고 장차 십수 권의 전질을 빌려 주신다면 많은 재물을 자신에게 주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하였다. 또한 연래에 정신이 쇠퇴하여 책을 덮으면 곧바로 잊어 바구니에 물이 줄줄 새는 것과 같아 시간을 넉넉하게 주어 조용할 때를 기다려 깊게 살핀다면 당신께서 베풀어 주시는 것이 더욱 많음이 될 것임을 바라고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1차 작성자 : 서은주

상세정보

1807년 5월 11일, 芝園 姜世綸이 『山谷集』을 빌리기 위해 藥坡 李鉉發에게 쓴 편지
1807년 5월 11일, 芝園 姜世綸이 『山谷集』을 빌리기 위해 藥坡 李鉉發에게 쓴 편지이다.
강세륜은 편지의 서두에서 수취인인 이현발형제에게 안부를 묻고 있다. 西峽에서 헤어진 뒤로 서로 만나 보지 못한 날이 이미 많아 매우 답답하다며 나그네가 머무는 적막한 곳에서 나란히 걷고 함께 자던 즐거움을 추억해 보면 묘연하여 짧은 꿈만 같다고 하였다. 또한 늘그막에 회포를 계속하기가 어려우니 어찌 마음이 슬프지 않을 수 있겠냐며 요즈음 형제분들은 함께 모여 즐김에 화목하시며 자제분들도 어버이 뜻을 받들어 즐겁게 잘 지내시며 손자들도 잘 지내시고 계시는지를 묻고 있다.
이어 강세륜은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있다. 자신은 이즈음 만년에 문을 닫아걸고 침묵하면서 어떤 때는 책을 보면서 근심을 삭이고 어떤 때는 아이들을 공부시키면서 즐거움을 의탁하니 이것이 도타운 풍류라고 했다. 옛 사람의 시에 이르기를, "눈앞에 있는 못난 자식들, 어버이의 마음 필시 위로하지 못하리라.[目前豚犬類 未必慰親思]" 하였는데 이것 또한 상정이지만 손자들의 총명하고 똑똑함과 같음에 이르러서는 돈견과 같은 사람들과는 크게 달라서 어버이에게 위로가 된다면 그 謝氏[상대방의 똑똑한 자식]의 문장이 심기고 끊어지지 않음을 크게 축하할 따름이라 하였다.
이세륜이현발 형제에게 『山谷集』을 빌리기를 원하고 있다. 송나라 黃庭堅의 시문집인 『산곡집』은 우리 고을의 흔치않은 책이니 그 책을 혹시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또 瓻가 癡가 됨을 알아 남에게 빌려주기를 기꺼워하지 않기 때문에 구구하게 보길 원하지만 얻을 수 없던 것이 여러 해가 지났다며 이에 높은 뜻을 받아 선반 위의 지극한 보배인 『산곡집󰡕을 아끼지 않고 장차 십수 권의 전질을 빌려 주신다면 많은 재물을 자신에게 주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하였다. 詩學이 道學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 옛날부터 경계되는 바가 있었는데 자신이 반드시 즐기고 하고자 하는 것이 文王의 昌歜, 宋子의 鷸冠에 면하지 못할 것이니 그 문장이 어찌 다만 시인의 「豳風 ․ 伐柯」가 되겠으며 또한 우리 유림들이 널리 섭렵하고 널리 수집하여 자원으로 삼는 것이니 지금 혹 주신다면 감히 손상시키거나 더럽히지 않고 다 읽을 때까지를 기다려 마땅히 돌려줄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년래에 정신이 쇠퇴하여 책을 덮으면 곧바로 잊어 바구니에 물이 줄줄 새는 것과 같아 시간을 넉넉하게 주어 조용할 때를 기다려 깊게 살핀다면 당신께서 베풀어 주시는 것이 더욱 많음이 될 것임을 바라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세륜은 오랫동안 나그네로서 힘든 상황이 사람으로 하여금 견디기 어렵게 되었고 또 산장의 花木이 자주 무성한 것이 생각이 나서 매번 杜工部의 "변함없는 맑은 그늘이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네.[不改請陰待我歸]"라는 구절을 외면서 자신도 모르게 만물이 사람을 저버리지 않고 사람이 도리어 만물을 저버리는 탄식이 있기 때문에 우막을 거두는 기약을 손꼽을 날이 멀지 않아 지나는 길에 다시 한 번 상대방을 만나 뵐 계획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도리어 말을 실천하지 못함을 스스로 초래할까 두려워하기도 하였다.
이 편지의 발급인인 강세륜(1761~1842)은 자는 文擧, 호는 芝園. 본관 晉州이다. 부친은 萍窩 姜必岳(1723~1795), 조부는 菊圃 姜樸(1690~1742)이며 皓隣 姜世白(1748~1824)의 동생이다. 거주지는 尙州 鳳臺이다. 鄭宗魯의 문인이다. 1783년 增廣試 병과로 문과에 급제하였고, 鐘城府使兵曹參判을 역임하였다.
수취인인 '台應'은 바로 李鉉發의 자이다. 이현발(1810~1884)은 호는 藥坡, 본관은 載寧이며, 부친은 李壽一이다. 거주지는 盈德 蒼水이다. 僉知中樞府事를 제수 받은 이력이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1차 작성자 : 서은주, 2차 작성자 : 김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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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년 강세륜(姜世綸) 서간(書簡)

台應兄棣座。

西峽解携之後。不相見日已多。殊極滯㭗 客窓涔寂中。追
想並筇聯枕之樂。則杳然如短夢。難續暮年懷抱。安得不作
惡也。謹問梨來。
棣履觀玩冲穆。庭玉承歡佳迪。而彧兒亦善做否。吾輩際此。
桑楡杜門塞兌。或看書消慮。或課童寓樂。此篤厚風流也。
古人詩曰。目前豚犬類。未必慰親思。是亦常情。而至若令孫之
聰悟潁發。大異於豚犬。而足以慰親。則多賀其謝氏之文種不
絶耳。第山谷集。吾鄕稀有之冊。而其或有之者。又認瓻爲癡。不肯
借人。以故區區願見。而不可得者。年已積矣。迺蒙高意。不吝架上
至寶。收惠假十數규全帙。若爾則奚翅錫我百朋而已哉。詩學
妨道。昔有所戒。則不佞之必嗜欲者。未免文王之昌歜。宋子之鷸冠
然其文。奚但爲韻人之豳柯乎。亦是資吾儒之廣獵博蒐。今倘
俯呈乎。不敢損汚俟卒業。當奉還。而年來神精減耗。掩券旋
忘。便同筐眼漏水。幸寬限時月。使得從容尋繹。則爲賜尤多
矣。第久旅苦況。令人難耐。且山庄花木頻登念頭。每誦杜工部
不改請陰待我歸之句。不覺有物不負人。人反負物之歎。故撤
寓之期。指日不遠。歷路更反一拜爲計。然却恐自致不踐言之
譏耳。餘萬不旣一。惟冀忠管。
丁卯午月旬一。弟 世綸 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