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4년 8월 24일, 청천서원의 都尙郁 외 4인이 文貞公 遺集에서 빠진 글을 인쇄하여 배포하였으나 두루 배포하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 趙生員에게 보낸 편지
1804년 8월 24일에 청천서원의 都尙郁 외 4인이 文貞公 遺集에서 빠진 글을 인쇄하여 배포하였으나 두루 배포하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 趙生員에게 보낸 편지이다.
노쇠한 몸으로 엎드려 있느라 덕의를 배울 길이 없어 늘 그리워했는데 일상생활이 만중하리라 생각한다고 첫인사를 하였다. 先師 文貞公 유집은 이미 간행한 것은 널리 반포하였으나, 간행하지 못한 것은 아직도 흩어져 있어 학문의 순수한 공과 경연에서 임금을 계도한 뜻이 글에 남아 있지만 후학의 안목에 質信할 수 없다고 하였다. 자신들은 이것이 두려워 작은 재물을 내어 약간 질을 인쇄하여 士友들에게 배포하였으나 넉넉히 인쇄하여 두루 배포하지 못한 것이 한이라고 하였다.
淸川書院은 경상남도 합천군 대양면 정양리에 있었던 서원이다. 1780년(정조 4)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李秉泰의 절행과 청백함을 추앙하여 淸白祠를 건립하고 위패를 모셨다가, 1808년(순조 8)에 '淸川'이라 사액되어 서원으로 개편되었다. 1869년(고종 6)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어 복원되지 못하였다.
발급인 가운데 都尙郁(1732~1814)은 본관은 星州, 호는 霽南이며 성주에 거주하였다.
1차 작성자 : 정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