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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이경유(李敬儒)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1+KSM-XF.1801.4725-20090831.02302570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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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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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경유
작성지역 경상북도 상주시
작성시기 1801
형태사항 크기: 28.9 X 51.7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상주 승곡 풍양조씨 입재공파종택 /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승곡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01년 이경유(李敬儒) 서간(書簡)
1801년 12월 27일 이경유가 도남서원 일관당(一貫堂)에서의 모임과 주변의 여러 일들에 관해 상의하는 편지이다. 먼저 상대방이 보내주신 편지는 매우 감사하다고 하고 있다. 이어서 혜염(薤鹽)을 바치는 일로 일관당에서 모임이 있고, 도남서원 원장이 정해져 다행스럽다고 하고 있다. 끝으로 척형이 자리에서 물러난 것은 너무 과중하다고 하고 있다.
1차 작성자 : 김인호

상세정보

1801년 12월 27일 이경유가 도남서원 일관당(一貫堂)에서의 모임과 주변의 여러 일들에 관해 상의하는 편지
1801년 12월 27일 이경유(李敬儒)가 미상의 수신자에게 보낸 편지로, 도남서원 일관당(一貫堂)에서의 모임을 알리고 유고가 있으면 미리 알려 줄 것을 부탁하면서 주변 일들에 관한 몇 가지 문제들을 상의하는 편지이다.
편지를 보냈다는데 받지 못하여 의아하던 중에 편지와 본고(本藁)를 받아 서너 번 읽고 성대한 말이 볼만하여 날마다 흠탄했지만 섣달에 병을 앓는다는 것을 알고는 염려를 견딜 수 없다고 첫 인사를 하였다. 자신은 어버이를 모시며 그럭저럭 예전처럼 지내 끝내는 군자께서 버리게 될까 두려워 부끄럽고 한스럽다고 자신의 근황과 심정을 전했다. 편지에서 한 말은 적절하여 연중(延中)우산(愚山)두릉(杜陵)에 준 편지의 대의와 비슷하니 지극한 뜻을 받들어 여러 현인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혜염(薤鹽)을 바치기 위한 도모는 2월 9일 일관당(一貫堂)에서 열기로 정했는데 이날 다른 장애는 없는 지를 물으면서 만약 유고가 있으면 미리 알려 달라고 당부하였다. 우산두릉의 답장 편지는 모두 가까운 친구들이 빌려가 드리지 못하니 뒷날을 기다릴 뿐이며 도원(道院)의 일은 수석(首席)이 단자를 내어 바뀌었지만 이미 다른 사람이 추천을 받아 자리가 오래 비지는 않게 되어 매우 다행이라고 하였다. 끝으로 중씨(仲氏) 척형(戚兄)이 한 때 잊어버리는 것은 특이한 일이 아니나, 앞 편지의 지나친 인혐(引嫌)은 과중한 것 같다는 생각을 전하면서 끝인사를 붙여 마무리 하였다.
이경유(李敬儒, 1750~1821)는 본관은 연안(延安)으로, 자(字)는 덕무(德懋), 호(號)는 임하(林河)이며, 상주 북곽(北廓)에 거주하였다. 식산(息山) 만부(萬敷)의 증손이며, 승연(承延)의 아들이다. 음보로 참봉이 되어 사도세자의 대의를 신명(伸明)할 때 소제(疏製)를 작성하였다. 시평집(詩評集), 창채시면(滄海時眠)을 저술하였고 유고가 전한다.
1차 작성자 : 정재구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01년 이경유(李敬儒) 서간(書簡)

聞有
長札下覆。而未及拜受。至今訝鬱。
忽伏承
惠札。又惠本藁。奉讀三四。可
見藹如其言也。日覺津津欽
歎。第審殘臘
靜養動止欠和。旋庸仰慮無任。
戚弟侍奉粗遣。而但依舊胡走
作。終恐爲君子所棄。愧恨何
及。所敎無非切當。延中
杜陵之書。大義略同。敢不奉
承至意。以副衆賢所期佇
耶。謀所以供薤鹽之資。定日於
仲春初九。定所則一貫堂上。方欲
仰報執事者。此伻先至。深
恨不敏。未知右日於執事。無
所相碍否。執事責愊然後。可
副士林之望。是日若有故。預爲回敎。
如何。謹當政日相報耳。愚山杜陵答書。
皆爲近
地親舊
所借去。
未得奉
呈。容俟
日後耳。
道院事。
首席發
單見遞。
還席已
作受薦。行
不至空曠。
幸甚幸甚。
令仲氏戚
兄。一時忘
却。非是異
事。而前
書引嫌太
過。似涉過
重耳。餘
餞迓萬福。不備。伏惟
下察。謹拜。
辛酉 臘月 卄七。戚弟 李敬儒 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