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8년 4월 15일 張胤宗이 해산할 달이 지난 종손부에 대해 염려하는 마음을 담아 예안 오천 광산김씨 설월당 문중의 金台翼에게 보낸 편지.
1798년 4월 15일 張胤宗이 해산할 달이 지난 종손부에 대해 염려하는 마음을 담아 예안 오천 광산김씨 설월당 문중의 김 진사에게 보낸 편지이다.
장윤종은 상대방과 소식이 끊긴지 오래되어 계속 그립다고 했다. 이어 상대방은 초여름 한가롭게 지내는 상대방의 기거와 집안의 가족들도 모두 평온한지 물었다. 寓所에 머물고 있는 사위는 아무 탈이 없으며 고요한 가운데 독실하게 일을 잘하고 있는지 궁금해 하였다.
본인은 병의 상태가 예전과 같으며, 정신은 작년보다 못한데 이는 당연하다며 초연한 마음을 드러냈다. 손부는 근행을 하게 되었는데, 가고 머무르는 상황에 대해 차마 마음을 가누지 못한다고 했다. 종손부는 산달이 이미 지났다고 들어 염려가 끝이 없다고 했다. 마지막에는 간단한 인사로 마무리했다.
이 편지의 발급인은 '胤宗'으로 누구인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동일한 서체의 1795년 김 진사에게 보낸 편지가 광산김씨 설월당 문중에 전해온다. 거기서 발급인을 '장윤종'이라고 표기했기 때문에 이 편지 역시 장윤종이 보낸 것으로 판단했다. 장윤종의 자는 繼善, 호는 老窩, 본관은 仁同이다. 여헌 장현광의 7대손으로, 그에 대한 자세한 이력은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정조 때 敦寧府 都正을 역임했다고 한다.
이 편지의 수급자는 '金進士'이다. 1790년 권사호가 김진사 君成에게 보낸 편지 역시 광산김씨 설월당에 전해온다. 군성은 書巢 金台翼(1736~1801)의 자이다. 따라서 김 진사는 김태익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다. 『光山金氏禮安派譜』에는 김태익의 손녀가 仁同 張氏인 張錫耆와 혼인했다고 한다. 장석기의 부친은 張瑋이다. 장윤종과 장석기와의 관계는 알 수 없지만, 장윤종의 본관이 인동인 점, 편지에서 그가 '孫婦의 안부' 대해 언급한 점, 발신인에 '査弟服'이라고 표기한 점으로 미루어 발신자와 수신자는 사돈 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12
『조선시대 간찰 서식 연구』, 김효경,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光山金氏禮安派譜』, 1977
1차 작성자 : 김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