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5년 3월 15일에 鄭灝가 초상에 사람을 보내 조문하지 못한 사정과 자신의 근황을 아울러 전하면서 말을 보내달라는 부탁을 들어주지 못하는 사정을 趙生員에게 알리는 편지.
1795년 3월 15일에 鄭灝가 초상에 사람을 보내 조문하지 못한 사정과 자신의 근황을 아울러 전하면서 말을 보내달라는 부탁을 들어주지 못하는 사정을 趙生員에게 알리는 편지이다.
초상에는 근력으로는 떨치고 가기 어려웠고 사람을 보내 대신 인사하는 것도 아직까지 미루니 절로 탄식만 일어날 뿐이라고 서두를 꺼냈다. 뜻밖에 지나던 심부름꾼이 와서 상중의 여러 절도에 대하여 알게 되었으나 어찌 위로할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더욱 슬픈 생각만 간절할 뿐이라고 하였다. 자신은 병으로 항상 괴롭고 손녀는 몸이 몹시 수척하여 끝내 완전하게 소생하지 못하니 절로 남은 근심과 걱정으로 눈썹을 펼 날이 없다고 근황을 전했다.
廟宇를 짓는 일은 봄에 시작하여 겨우 기둥을 세우고 들보를 올렸으나 두서를 잡아 나가는데 기한이 없다고 그 동안의 사정을 전했다. 서신을 보낼 사람이 없었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고 하면서, 스스로 사람 노릇을 못하였으나 혹 찾아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말을 보내라고 하였는데 사위가 빌려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아 부탁을 어기게 되었으니 탄식할 만하다고 하였다. 며느리는 어제 옛집으로 돌아갔다고 전하면서 가까운 시일에 만나 회포를 풀기를 바란다는 끝인사로 마무리 하였다.
발신자 정호(1759~1822)의 본관은 東萊, 자는 孟潤. 호는 肯齋이다. 칠곡에 거주하였으며 1783년 式年試 3등으로 생원에 합격하였다. 유고가 전한다.
『옛편지 낱말사전』, 하영휘, 돌베개, 2011.12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12
1차 작성자 : 정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