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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0년 권사호(權思浩)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1+KSM-XF.1790.4792-20090831.00282570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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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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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권사호, 김태익
작성지역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
작성시기 1790
형태사항 크기: 29.7 X 40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오천 광산김씨 설월당종택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790년 권사호(權思浩) 서간(書簡)
1790년 4월 6일, 권사호가 호남의 부탁을 거절하자는 뜻으로 김태익에게 보낸 편지 보낸 편지이다. 먼저 상대의 안부를 묻고 온양의 일과 영남 유생들의 일은 어떻게 결론지어졌는지를 물어보고 있다. 이어서 호남의 유생들이 부조를 요청했는데 우리 쪽의 부채도 갚지 못한 상황에서 그들의 부탁에 응하기 보다는 거절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光山金氏禮安派譜』,
1차 작성자 : 김인호

상세정보

1790년 7월 20일, 권사호가 호남의 부탁을 거절하자는 뜻으로 김태익에게 보낸 편지.
1790년 7월 20일, 權思浩가 호남의 부탁을 거절하자는 뜻으로 金台翼 보낸 편지이다.
편지의 첫머리에서는 원자가 탄생한 사실을 적고 상대방과 도산 어르신의 안부를 묻고 있다. 여기서 나오는 원자는 순조이다. 이어서 온양에서 일어난 일은 그들이 무지해서 일어난 일이고 영남 유생을 보낸 일은 잘 마무리 되었는지를 묻고 있다. 『정조실록』에 1791년 2월 22일 靜退書院에 孟希道의 위차 문제를 가지고 지방의 유생들이 상소를 올려 이 내용을 가지고 임금이 전교하는 기사가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온양의 일은 靜退書院의 일인 것 같으나 자세한 상황은 알 수 없다. 또한 본격적으로 호남의 부탁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호남에서 부조를 요청해 우리 쪽에서는 저번에 倡義疏를 하고 남은 돈으로 이를 해결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왔는데 자신이 보기에는 우리 쪽에 일도 마무리 되지 않은 상황에서 남의 부조에 응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의견을 나타내고 있다. 그 예로 서울의 부채와 소수였던 씨, 소천 형의 부채를 아직 갚지 못했다는 것을 제시하였다. 끝으로 이 문제를 도산서원 원장과 여러 어르신들께서 다시 상의해 보시기 바란다고 하고 있다.
편지의 발급자인 권사호는 자가 其天, 호는 泗川으로 본관은 안동이다. 부친은 權正宅이고 아우는 權思簿이다. 그는 1783년 51세의 나이로 증광시 생원 3등 36위로 입격하였다. 수취자인 金進士는 金台翼(1736~1801)이다. 자가 君成, 호는 書巢으로 본관은 光山이다. 부친은 金績이다. 그는 1786년 식년시에서 1등으로 생원에 합격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편지는 당시 사림에서 어떠한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어떻게 公義를 모으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사료가 될 것이다. 또한 疏廳을 하면서 다른 지역에서 부조를 걷는 모습도 살펴 볼 수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光山金氏禮安派譜』,
1차 작성자 : 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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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790년 권사호(權思浩) 서간(書簡)

金進士 執事。酉谷 弟 書。
君成老兄。謹候上狀。
[着名]謹封 【權泗川】
天佑東方。
元良誕降。普率同抃。曷有其極。
莫往莫徠。不接起居之問。殆一年于
玆。如何不悵然。今年潦暑無前。伏
未審
兄履啓居康迪。玉眷均宜。而
陶山丈起居。亦佳勝否。仰溯無任區
區。弟年徠衰病種種。幷與膝下之憂
迭相擾惱。悶苦可喩。就溫陽事。
其無知妄作。固不足掛之齒牙。而亦
可見世道之寒心。嶺儒治送之
後。更無所聞。未知其間已有究竟否。
仄聞彼中賻助之請。以道內所存
百緡銅應之云。可謂不煩再收。而得
其便宜。但此錢之當初收合。出於倡
義疏之緖餘。而其時京債。道中之
永川醴泉眞寶等處。終不收送。
其元定之數。疏首老家債之未
報者。爲三十餘緡。韶川兄處。亦有
十許貫未償者。而前後催督於數郡者。不止
一再。而漠然不應。事勢不得不以無歸屬之
留錢應副計。而非一人之所可擅便。故欲訪道
會時區處矣。今聞用之於湖中疏資。則其先
後緩急不同。未知已爲輸送於彼中否。不然則
不宜如此處置。未
知於僉意如何。
以此言仰陳。則
陶院首席及
諸老成人以爲
更議。彼中應求
之地。如何如何。弟非
其時任員。而亦與聞
於前疏之事。此則
成叔晦之所可句管。
叔晦兄書。所以奉聞於貴中者也。玆以奉
煩。姑不備。伏惟
下照。謹候上狀。
庚戌 七月 卄日。弟 權思浩 拜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