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0년 7월 20일, 권사호가 호남의 부탁을 거절하자는 뜻으로 김태익에게 보낸 편지.
1790년 7월 20일, 權思浩가 호남의 부탁을 거절하자는 뜻으로 金台翼 보낸 편지이다.
편지의 첫머리에서는 원자가 탄생한 사실을 적고 상대방과 도산 어르신의 안부를 묻고 있다. 여기서 나오는 원자는 순조이다. 이어서 온양에서 일어난 일은 그들이 무지해서 일어난 일이고 영남 유생을 보낸 일은 잘 마무리 되었는지를 묻고 있다. 『정조실록』에 1791년 2월 22일 靜退書院에 孟希道의 위차 문제를 가지고 지방의 유생들이 상소를 올려 이 내용을 가지고 임금이 전교하는 기사가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온양의 일은 靜退書院의 일인 것 같으나 자세한 상황은 알 수 없다. 또한 본격적으로 호남의 부탁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호남에서 부조를 요청해 우리 쪽에서는 저번에 倡義疏를 하고 남은 돈으로 이를 해결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왔는데 자신이 보기에는 우리 쪽에 일도 마무리 되지 않은 상황에서 남의 부조에 응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의견을 나타내고 있다. 그 예로 서울의 부채와 소수였던 이씨, 소천 정형의 부채를 아직 갚지 못했다는 것을 제시하였다. 끝으로 이 문제를 도산서원 원장과 여러 어르신들께서 다시 상의해 보시기 바란다고 하고 있다.
편지의 발급자인 권사호는 자가 其天, 호는 泗川으로 본관은 안동이다. 부친은 權正宅이고 아우는 權思簿이다. 그는 1783년 51세의 나이로 증광시 생원 3등 36위로 입격하였다. 수취자인 金進士는 金台翼(1736~1801)이다. 자가 君成, 호는 書巢으로 본관은 光山이다. 부친은 金績이다. 그는 1786년 식년시에서 1등으로 생원에 합격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편지는 당시 사림에서 어떠한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어떻게 公義를 모으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사료가 될 것이다. 또한 疏廳을 하면서 다른 지역에서 부조를 걷는 모습도 살펴 볼 수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光山金氏禮安派譜』,
1차 작성자 : 김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