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9년 11월 21일, 李世聞이병으로 향교 모임에 참석할 수 없음을 金進士에게 알리는 편지.
1789년(정조 13) 李世聞이 金進士에게 병으로 향교 모임에 참석할 수 없음을 알리는 편지이다.
편지의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이세문이 숙병으로 고생스러운데 보름 전부터 귀에 농즙이 흘러 힘들게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였다. 두 번째로는 낙천서원[洛川祠] 건립에 내외 자손이 정성과 뜻을 다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며, 임명을 띠고 있는 이세문은 더욱 마음을 다할 것이라고 하였다. 마지막에는 내일 향교 모임에 합석하는 것이 마땅하나 병으로 참석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하였다. 마지막에 언급한 내용이 편지를 쓰게 된 직접적인 이유이다.
편지 본문에서 언급한 '洛川'은 낙천서원[洛川祠]을 일컬으며, 여기에는 金富弼·金富仁 등 광산김씨 예안파의 여러 인물이 제향되어 있다. 1868년(고종 5) 서원훼철령으로 훼철되었으며, 서원이 위치한 지역은 현재 안동댐 건설로 수몰되었다.
이 편지를 작성한 李世聞(1724~1795)은 1762년(영조 38) 식년시에 진사로 합격하였다. 本貫은 眞城이고, 字는 汝晦이며, 號는 龍溪이다. 예안현 宜仁에 거주하였으며, 溫溪 李瀣(1496~1550)의 후손이다. 부친은 李守忱이고, 형은 李世源이며, 동생은 李世直이다. KSAC+K01+KSM-XF.0000.4717-20090831.002825700169 역시 이세문이 김진사에게 보낸 편지인데, 피봉에 '李稷山'이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세문이 직산 현감을 역임한 것으로 짐작된다. 저서로는 龍溪遺稿가 있다.
이 편지는 시계방향으로 돌려가며 쓰여, 回文 형식을 띠고 있다. 내용은 우측 세 번째 줄 '阻久心馳卽拜'부터 시작된다. 여기서부터 좌측 방향으로 세로 읽기로 내용이 이어지며, 상단 가로로 적힌 부분으로 이어진다. 상단 역시 우측에서 좌측으로 내용이 이어지며, 마지막 부분은 다시 맨 우측 부분으로 이어진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光山金氏禮安派譜』,
1차 작성자 : 김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