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4년 7월 29일 내종 권익중이 김협에게 자신의 근황을 알리면서 김협이 자신의 딸의 병을 보살펴 완전하게 회복시켜 준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1784년 權益中이 내종간인 金綊에게 보낸 편지이다.
첫 부분에서는 전염병과 여름 장마로 인해 한 동안 소식이 끊겼던 정황을 쓰며 김협과 그 가족들의 안부를 궁금해 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소식을 전하고 있는데, 노인이라 앞날을 내다보기 힘든데다가 앓던 눈병이 고질처럼 되어 어떤 약도 효과가 없는 현실에 죽을 때가 다 되어 그렇다며 체념하는 듯한 절망을 내비치고 있다.
이어서 곧 있을 과거에 김협이 이제는 합격할 때가 되었다며 꼭 합격하기를 바란다고 기원하고 있다. 이 때 김협의 나이 벌써 58세였다. 그는 끝내 벼슬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늦게까지 과거합격에 대한 기대를 놓지 못했었던 듯하다.
마지막으로 권익중은 자신의 딸이 병이 점점 깊어져 그 고통이 매우 심했는데 김협이 여름에 데리고 가 애써 보살펴 완전하게 회복시켜 준 것에 대해 매우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직접 만나 회포를 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말하였다.
수신자인 김협(1728~1801)은 김휘세의 셋째아들 金鏶(초명은 遠昌)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金尙文이다. 본관은 光山, 자는 長仲이고, 호는 芝厓다. 모친은 안동권씨로 冲齋 權橃(1478~1548)의 후손인 權斗建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성리학의 기본 서적에 잠심하여 암송할 정도였고, 집안이 가난해도 의관과 예의범절을 절도 있게 하여 세금을 징수하는 관리들도 그의 집에 이르러서는 난동을 부리지 않을 만큼 어진 행적으로 주위를 감화시켰다고 한다. 전하는 다른 저술은 없고, 三從姪 金是瓚(1754∼1831)[계암 김령의 6대손]이 쓴 묘갈명 「三從大父進士公墓碣銘」이 남아있어 그의 행적을 살피는 데 참고가 된다.
수신자는 단정하기 어렵지만 내종간이라고 한 점, 김협의 외가가 안동권씨인 점, 그리고 당시 안동 이 지역에서 활동했던 안동권씨 인물에 권익중(자는 受甫)이 발견되는 점 등으로 보아 권익중이라고 최종적으로 판단하였다.
『옛편지낱말사전』, 하영휘 외, 돌베게, 2011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1차 작성자 : 최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