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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2년 조아진(趙雅鎭) 외 1인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1+KSM-XF.1782.0000-20090831.023025700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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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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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조아진, 조간진, 조목수
작성시기 1782
형태사항 크기: 31.4 X 76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상주 승곡 풍양조씨 입재공파종택 /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승곡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782년 조아진(趙雅鎭) 외 1인 서간(書簡)
1782년 2월 18일에 조아진, 간진 형제가 조목수에게, 보내준 위장에 대한 감사와 자신의 근황을 전하면서 주변 인물들과 관련된 일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내용이다. 상주 종시 집의 변고는 정리가 비록 절박하더라도 상언할 길이 없지만 머지않아 나라에 경사가 있으니 은택이 내려져 석방되지 않겠느냐고 하였다. 자신도 새로 쓴 산소가 산 아래 사람들이 말썽을 일으켜 난처한 단서가 있어서 이장을 하게 되어 슬픔과 고민을 말로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옛편지 낱말사전』, 하영휘, 돌베개, 2011.12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12
1차 작성자 : 김선주

상세정보

1782년 2월 18일에 趙雅鎭, 簡鎭 형제가 보내준 위장에 대한 감사와 자신의 근황을 전하면서 주변 인물들과 관련된 일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내용을 趙沐洙에게 전하는 편지.
1782년 2월 18일에 趙雅鎭, 簡鎭 형제가 보내준 위장에 대한 감사와 자신의 근황을 전하면서 주변 인물들과 관련된 일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내용을 趙沐洙에게 전하는 편지이다.
먼저 설날에 상주 宗侍가 찾아와 전해준 위장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하고, 봄이지만 눈보라가 치는 날씨를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해 하면서, 흉년으로 먹고 살기가 어려울 것이지만 도와줄 수 없는 탄식만 간절하다고 하였다. 양자로 들인 조카의 관례와 혼례의 기일이 정해진 것을 기뻐하면서 자질과 문장이 부형을 닮아 걱정이 없을 것이라고 하면서 부러움을 금하지 못하였다. 온 편지에 머리카락이 듬성해지고 이가 빠졌다고 하니 놀랍고 의아했으나 쉰이 된 늙은이에게는 이치와 형세가 그러하지만 위기지학을 귀숙처로 삼는다면 늘그막의 거둠에 해가 되지 않을 것인데 어떠냐고 하였다.
자신은 목숨만 이어가면서 삼년 동안 빈소를 지키면서 예서를 읽지도 못하고 다른 글에 힘을 쓰지도 못하면서 세월만 보내 생각하면 땀이 나지만 어쩌겠느냐고 자책하였다. 상주 종시 집의 변고는 정리가 비록 절박하더라도 上言할 길이 없지만 머지않아 나라에 경사가 있으니 은택이 내려져 석방되지 않겠느냐고 하였다. 자신도 새로 쓴 산소가 산 아래 사람들이 말썽을 일으켜 난처한 단서가 있어서 이장을 하게 되어 슬픔과 고민을 말로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생의 혼처에 관한 일은 그가 마침 영외로 내려가기 때문에 좌하를 찾아보게 한 것은 좋은 인연을 위해서만은 아니고 피차간에 믿음을 통하게 하려는 것이었는데 여러 달을 객지에서 보내느라 뜻을 얻지 못하고 돌아오게 되어 안타깝다고 하였다.
끝으로 季明종시의 병의 차도와 장천과 승계의 여러 일가집의 안부를 물으면서 수신자의 당숙과 승계 당숙의 소식을 알려 달라는 부탁을 하면서 마무리 하였다.
수신자 조목수(1736∼1807)는 조선 후기 유학자로 본관은 豊壤, 호는 舊堂이다.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오직 자기 수양과 후진 양성에 힘썼다. 시문집으로 10권 5책의 『구당선생문집』이 전한다. 주목할 작품으로 雜著의 「열부손유인전」‧「장수현고리박성인혈서사적」‧「용학강의」 등과, 정치를 하는 데는 文飾을 잘 꾸미는 것보다 실제적인 공적을 중시해야 한다는 내용의 상소문 「응지소」 등이 있다.
『옛편지 낱말사전』, 하영휘, 돌베개, 2011.12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12
1차 작성자 : 정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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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2년 조아진(趙雅鎭) 외 1인 서간(書簡)

稽顙。客冬李生之去来。偶是不易得之信便。而其去也有信。其來也無
信。咄咄。伊人。不識吾輩相與之深也。廼於元日。棘人宗侍。意外歴訪。袖傳
一緘。忙手披開。卽座下昆季䟽也。首尾屢百言。慰存備至。情念藹
然。乍接書靣。無異對討。千里竿牘之不可已。有如是矣。傾瀉之極。継
以哀感。第䟽出在於前臘念日。到今便作隔嵗消息。獻發已久。月又
再圓。不審即辰。侍外僉起居。更如何。時當載陽。風雪交作。殆若
凝冱天氣。在在呼寒。有紇干山頭意思。嶺以南風氣。不并以北。未知能
免此患否。最是儉嵗艱食。良非細憂。陋巷簞瓢。雖欲不改其樂。仰
事俯育。百慮交萃。謀生之策。亦安得不關心也。只切愛莫助之歎爾。
負螟之示。以猶子而作子爲
先大夫冢嗣。此何異於己出。聞冠婚有期。可想嘉悅倍深。醴泉
有源。芝林有根。其姿質文章。酷肖賢父兄。則可謂百不憂矣。丹
山羽毛。無路一覩。甚欝甚欝。且如罪人者。窮命所關。己不育兒。弟又無
子。竊恐此事便已。還不勝歆羨也。來䟽。髮星牙脫云云。驟見驚
訝。黙數座下年齒。則四紀有七。居然爲五十翁矣。衰相之符至。
理勢則然。好箇文章。大家經綸。消了於閑中日月。區區親愛之心。不
得不爲之介介。雖然。雅趣所存。亦甞覷得斂華反實。歸宿於爲己
工夫。不害爲桑楡之收。如何如何。每觀昔賢遺言。必以炳燭爲貴。亦
不能無望於吾座下也。秋圍已定。又當於後生叢中。出一口
氣否。吾輩會靣。只有此一路。深企深企。舊堂之重新。實仰
肯搆之美意。物力從何鳩聚。而能辦此一副大舉措耶。罪人。
視息苟全。又逢新年。春序強半。祥月不遠。俯仰叫隕。
只恨一縷之冥頑而已。三年苫塊。憂患事故。逓相膠擾。旣無讀
禮之可言。又不用力於他文字。秪是悠泛度日。與平常無頼人
一般。夷考其行。不知正合於先王何等禮也。每一思惟。惶汗
怵惕。奈何奈何。棘人宗侍家所遭。誠一變厄。情理雖切迫。
上言伸暴。姑無其路。匪久。國有大慶。則當有霈澤。罪名
旣不深重。伊時。豈無放還之理耶。罪人亦以新山爲山下人作梗。屢
度訟卞。輒皆得决。而猶不無多小難處之端。方營移窆。哀悶不
可言。李生婚處事。渠適下徃嶺外。故使之進謁扵座下者。
非直為一段佳緣。兼欲通信於彼此。客逰屢朔。困不得志而歸。
依舊是老都令樣子。還覺憐愍。季明宗侍所慎。卽已差可否。
哀遑未暇。各幅此紙。雷照好矣。長川․勝溪諸宗宅。皆平安
否。尊堂叔。前月兩除納言。而以在外卽遞。勝溪尊堂叔
向入臺望。此意仰告如何。餘荒迷不次。謹䟽。
壬寅 二月 十八日。罪宗末 雅鎭 簡鎭 稽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