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1년 4월 26일에 琴英澤이 미상의 수신자에게 시운을 보내고, 수신자 및 여러 인척들에게 안부를 묻는 편지
1781년 4월 26일에 琴英澤이 미상의 수신자에게 시운을 보내고, 수신자 및 여러 인척들에게 안부를 묻는 편지이다.
지난번 淸齋에서 여러 날 더불어 노닐던 것을 추억하면서 수신자의 안부를 물었다. 강학자리에서 모두 운에 맞추었으나 자신은 미처 하지 못하였고, 또 뒤늦게 지은 것도 인편이 없어서 이제야 부치게 되었으니, 한 번 본 후에는 감추어 달라고 겸사를 하였다. 나머지 사연은 만나서 전하겠다고 마무리하였다.
첫 번째 추록에서는 仲氏戚老에게 안부를 물으며 그의 눈병을 걱정하였다. 증상에 맞는 약제가 없다면, '마음을 바르게 한다[正胷中]'라는 말이 신령한 약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또 만들어 보내기로 한 신발은 工人이 염병으로 생사가 오락가락 하여 염병이 가라앉은 후에 처리하겠다고 하였다.
두 번째 추록에서는 堂叔令監과 子希형의 안부를 물었다. 또 과거시험을 앞두고 筆手를 구하였는지를 물으며, 만약 정해놓은 이가 없다면 자신이 추천하는 속칭 '福手'라는 사람을 쓰라고 추천하였다. 앞으로 그를 직접 데려가서 그의 실력을 직접 보고 논의하자고 하였다.
세 번째 추록에서는 수신자의 행차가 근방을 지나갔으나 만나지 못하였음을 한탄하였다. 이 편지도 미리 써 놓았으나 인편을 찾지 못하다가 이번에 추신을 덧붙여 보낸다고 하였다. 수신자가 말한 榜目은 上番軍이 돌아오는 편에 부쳐 왔는데, 길을 오가는 동안 물에 빠져서 모양이 좋지 않다고 하며, 한권을 보내니 仲氏께도 전해 달라고 하였다.
금영택(1739∼1820)의 본관은 奉化, 자는 再卿, 호는 晩寓齋이다. 부는 琴一恊이고, 모는 護軍 李時蕃의 딸 永州李氏이다. 尙州에서 거주하였고, 趙道經의 딸 豊壤趙氏와 혼인하였다. 1790년(정조 14)에 생원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유학하였다. 하지만 당시의 세태를 보고 귀향하여 다시는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저서로 『晩寓齋文集』 4권 2책이 전한다.
옛편지 낱말사전, 하영휘, 돌베개, 2011.12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12
1차 작성자 : 정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