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5년 10월 5일 趙虎然이 문병도 못하였는데 편지를 보낸 것에 고마움을 전하며 더욱 조리할 것을 당부하고 자신이 처한 상황과 다음 달에 찾아가겠다는 뜻을 미상의 수신자에게 알리는 편지.
1775년 10월 5일 趙虎然이 문병도 못하였는데 편지를 보낸 것에 고마움을 전하며 더욱 조리할 것을 당부하고 자신이 처한 상황과 다음 달에 찾아가겠다는 뜻을 미상의 수신자에게 알리는 편지이다.
병으로 해를 넘겼으나 문병하지 못했는데 뜻밖에 편지와 시를 보내준 것에 감사하면서, 요즈음의 안부를 묻고 操養의 공부를 더할 것을 부탁하였다. 자신은 여름과 가을의 상황은 부끄러워 말할 수 없으나 조상과 관계되어 자중하지 못했으니 어찌하느냐고 하였다. 본래 게으른 자질에 세속에 물들어 조금도 진보할 희망이 없어 탄식할 만하다고 하였다. 다음 달에 찾아가 조용히 손을 잡고 싶으나 紅痘가 심하여 매우 염려되며, 근래 시상이 텅비어버렸으나 답을 하지 않을 수 없어 졸렬함을 잊고 지어 보내니 읽은 뒤에 강물에 버리라고 하였다.
조호연(1736∼1807)의 본관은 豐壤, 자는 士威, 호는 舊堂이며 후에 沐洙로 개명 하였다. 약관에 史書와 제자백가서를 두루 섭렵하였으며 향시에 10차나 합격하였으나 거듭되는 상사와 우환으로 대과를 보지 못하였다. 중년 이후에는 깨달은 바 있어 과거 공부를 폐하고 向裏의 공부에 전심하면서 후학양성에 힘썼다. 1796년(정조 20)에 영남 유림에서 의리를 창도하는 소를 올릴 때 疏首로 추대되었다. 저서로는 『구당집』이 전한다.
『옛편지 낱말사전』, 하영휘, 돌베개, 2011.12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12
1차 작성자 : 정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