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1759년 조석철(趙錫喆) 외 1인 위장(慰狀)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1+KSM-XF.1759.4725-20090831.023025700833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위장
내용분류: 종교/풍속-관혼상제-위장
작성주체 조석철, 조석목
작성지역 경상북도 상주시
작성시기 1759
형태사항 크기: 35.2 X 45.2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상주 승곡 풍양조씨 입재공파종택 /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승곡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759년 조석철(趙錫喆) 외 1인 위장(慰狀)
1759년 2월 14일에 사촌동생 석철석목이 쓴 편지이다. 종형의 죽음에 한탄하는 마음을 전하며 각 댁의 우환에 오직 어진 하늘이 돕기만 바랄 뿐이라고 했다. 약목으로 시집간 딸의 병의 양상이 심하여 사위의 회시(會試) 행차가 망설여지지만 병세가 더해지지 않으면 8, 9일 사이에 출발할 계획이라고 했다. 다만 행구를 마련할 여가가 없어 기한에 맞추어 출발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하면서 상대방 쪽에 수레가 돌아오는 시기가 언제인지 물었다.
『옛편지 낱말사전』, 하영휘, 돌베개, 2011.12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12
1차 작성자 : 김명자

상세정보

1759년 2월 14일에 종제 趙錫喆錫穆이 죽은 종형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과 계부 및 약목으로 시집간 딸과 사위의 소식을 전하면서 만나 회포를 풀고 싶은 소망을 미상의 수신자에게 전하는 위장.
1759년 2월 14일에 종제 趙錫喆錫穆이 죽은 종형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과 계부 및 약목으로 시집간 딸과 사위의 소식을 전하면서 만나 회포를 풀고 싶은 소망을 미상의 수신자에게 전하는 위장이다.
중형이 죽은 것을 한탄하면서 처음 병을 앓을 때 가볍지는 않았으나 마땅히 나을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금석같이 믿었는데 어찌 이런 지경에 이르렀느냐고 안타까워하였다. 어버이를 여의고 외롭게 사는 남은 삶에 믿을 것은 형제인데 지금 갑자기 이런 지경에 이르니 우리 외로운 이는 어떻게 살지 하늘을 우러르면 가슴이 찢어져 따라죽고 싶으나 그럴 수도 없으니 어찌하느냐고 하였다. 이때의 생활이 어떠하며 日記의 일은 이미 마쳤는지 궁금해 하면서 조용히 여관에 앉아 생각이 고향에 이르면 슬픔과 염려가 마음에 교차하여 편안히 잘 수 없을 듯하다고 걱정하였다.
자신들은 초상의 끝에 마음과 혼이 꺾이어 기운을 잃어 세상사는 재미가 없는 가운데 각 댁의 우환이 위급하여 오직 어진 하늘이 돕기를 바랄 뿐이라고 하였다. 若木으로 시집간 딸의 병은 4, 5일 사이에 여러 병의 증상이 전에 비해 더한 것 같아 지금 약을 쓰고 있는데 의술의 힘을 얻는다면 다행이라고 하였다.
사위의 회시 행차는 이 때문에 망설이는데 병세를 보아 더해지지 않으면 8, 9일 사이에 출발할 계획이나 행구를 마련할 여가가 없어 기한에 맞추어 출발할 수 있을지 기필할 수 없으니 매우 걱정이라고 하였다. 수레가 돌아오는 시기는 언제인지 이처럼 슬프고 정신없을 때에는 만나 회포를 풀 한 생각이 더욱 간절하나 길이 멀어 어찌 할 수 없다고 하면서 끝인사를 붙여 마무리 하였다.
발신인 조석철(1724~1799)의 자는 明仲, 호는 靜窩이며, 善經의 아들로 상주사람이다. 權相一에게 수학하여 학문의 방법을 듣고 더욱 분발하여 학문에 힘썼다. 1753년(영조 29) 사마시에 합격하여 태학에 머물렀는데, 學規가 문란함을 보고 벼슬길을 단념하고 고향에 돌아와서 정주학에 전념하였다. 이해득실을 도외시하여 오직 수양에 힘썼으며, 다른 한편으로 자제를 모아 소학을 강하고 매월 道南과 涑水書院에서 사서를 강의하였다.
조석목(1726 ~ ?)의 자는 遠仲이며 석철의 아우이다. 1756년(영조 32) 식년시에서 병과 25위로 급제하였다. 1761년(영조 37)에는 주서로 활동하였으며 6품으로 품계를 올려 받았다. 1779년(정조 3)에 獻納으로 재직 중 임금에게 상소를 올려 聖學에 힘쓰고 어진 관리를 등용할 것 등에 대하여 직언하기도 하였다. 1782년(정조 6)에도 충성스럽고 강직한 諫官들을 등용하여 言路를 확충할 것을 건의하였다. 그 외에도 각종 폐단 등에 대하여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옛편지 낱말사전』, 하영휘, 돌베개, 2011.12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12
1차 작성자 : 정재구

이미지

원문 텍스트

1759년 조석철(趙錫喆) 외 1인 위장(慰狀)

謹封。
痛哭言。哀我仲兄。何辜于天。而毒降酷戾。至於此極。死喪
之來。人家之所不免。而寧有如是之冤枉。慘惜而殘酷哉。始病之
初。症甚不輕。而意謂一時偶感。自當見瘳。區區之情。恃之如金
石。豈有一分慮及於此。而萬萬夢外。竟至於莫可救之境。蒼天蒼天
此何爲者此何爲者。哀我仲兄。胡至於此哉。天道無知。使我仲兄。無子而夭。
身後荒凉。無異兒少之喪。而寃孀之被髮。徒跣叫叩。欲盡之狀。
是豈人理之所可堪當哉。豈意吾家有此慘痛景色耶。孤露
餘生。所恃者兄弟。而今忽遽至於斯。哀我零丁。何以爲命。仰天摧
心。直欲隨隕無知。而不可得也。奈何奈何。頃伏承■〔紙〕末■■
下書。感淚不覺沾臆也。因伏審伊時
客裡氣候萬安。亦免近侍之任。而移付閑職。是固仕宦之例。而伏
切慰幸之至。伊後經朔。而更未聞消息。不審
起居候。際玆若何。而日記之役。其已了當耶。伏想悄坐旅館。念及
家鄕。而悲廬交中。必不能安寢矣。弟等。喪禍之餘。心魂沮喪。忽忽
無人世況味。而方以卄七營葬。自今以後。萬事已矣。奈何。如許中。各宅
憂患非常。季父主。以難名之症。晝夜蒼黃。今幾一月。奄奄氣
息若不保朝夕。以症情言之。則可謂萬分危重。而惟望其仁天之垂
佑也。若木賓。婦病浮氣之發已久。而無添劇之患矣。四五日來
諸般症情。比前似加。故方試藥餌。若得刀圭之力。何幸。而渠之
會行。以此咨且。其爲憫迫。何可勝喩。姑觀病勢。若不加劇。則八九日間。發
程爲計。而尙無一毫暇及於行具。及期發行。亦未可必。切悶切悶。返駕之期
當在那間。如是悲遑憂迫之際。益切一念奉敍之願。而路旣云遠。何由可得。
適因科行。暫此書上。而滿腔懷緖。萬不一備。伏惟
下鑒。上書。
己卯 二月 十四日。從弟 錫喆 錫穆 上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