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9년 윤6월 20일에 表從服人 景澈이 미상의 수신자에게 大阮 형과 從台의 요절을 위로하면서 부의를 보내지 못한 것을 변명하는 편지
1759년 윤6월 20일에 表從服人 景澈이 미상의 수신자에게 大阮 형과 從台의 요절을 위로하면서 부의를 보내지 못한 것을 변명하는 편지이다.
대완 형이 고아한 명망을 지니고도 벼슬을 하지 못하고, 또 괴이한 병에 걸려 세상에서 훌륭한 일을 하지 못한 것을 한으로 여겼는데, 오래 살지도 못해 마음이 아프다고 하였다. 대완 형을 깊이 사랑한 수신자는 어떻게 견디겠느냐고 걱정하며, 從台가 또 청년으로 요절하니 그 참혹함을 어찌 말로 다 하겠느냐고 위로하였다. 이어서 객지에서 벼슬하는 생활이 어떠한지 물었고, 오래 郞署에 머물고 청요직에 들어가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였다. 자신이 지난해 靈光을 잃은 슬픔과 손자를 잃은 아픔을 전하였다. 지극히 잔약한 곳에 처하여 처자식을 기르기에도 부족하고, 지친간의 상사에 부의조차 할 수 없으니, 남들이 공격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자신의 입장을 변명하였다. 별지는 충고이지만 어기지 말기를 바란다고 하면서, 편지지 30장을 보낸다는 추신이 붙어 있다.
별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새 주천을 앞두고 영남 사람은 영남 사람을 추천해야 하는데, 자신의 집 注書가 公義에서 빠질 수 없다고 하면서 영남에서 茂叔보다 나은 사람이 있느냐고 하였다. 만약 영남의 뜻을 모른다면 사람을 놓치는 책임을 어떻게 감당하겠느냐면서 나머지 한사람은 李子明과 金有達 가운데 한 사람을 가리는 것은 상대방의 뜻에 달렸을 뿐이니 굳이 한 사람을 잡아 억지로 말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발신자 金景澈(1698~1764)은 본관이 의성, 자는 淸仲, 호는 西坡로, 봉화 해저에 거주하였다. 1741년 式年試 2등으로 생원에 합격하였고, 蔭仕로 현감을 제수 받았다. 유고가 전한다.
『옛편지 낱말사전』, 하영휘, 돌베개, 2011.12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12
1차 작성자 : 정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