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4년 5월 8일에 이기중이 조 진사(趙進士) 댁에 방문하려고 하였으나 비를 만나 돌아오게 되었다는 사정을 알리며 보낸 편지
1754년 5월 8일에 이기중(李沂中)이 조 진사(趙進士) 댁에 보낸 편지로, 자신을 위해 찾아준 것에 고마움을 전하면서 자신도 찾아가려고 길을 나섰지만 비를 만나 돌아오게 되었다는 사정을 알리며, 아울러 집안 족숙의 편지를 종씨에게 전해달라는 부탁을 담고 있다.
일전에 자신 때문에 말을 달린 수고를 하여 기쁜 나머지 매우 탄식을 하였는데, 여행 중 비를 만나 돌아가는데 낭패나 면했으며 편안히 지내는지 매우 그립다고 첫 인사를 하였다. 자신은 어제 종일 내리는 비를 만났지만 포만해서는 불가하다고 여겨 비를 맞으며 정산(鼎山)에 투숙하였는데 비에 젖어 평소 앓던 하복부의 통증이 갑자기 심해졌고, 앞 시내의 물이 건널 형편이 아니어서, 머뭇거리며 바라만 보다가 돌아왔으니 이곳의 형편을 필설로 말할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이에 안부 편지를 쓰면서 성곡(省谷)의 김 상사(上舍)를 통해 조만간 전달하려 하지만 객지에 종이가 귀하고 조섭을 위해 급히 돌라오느라 대완장(大阮丈)께 편지를 쓰지 못해 매우 죄송하다고 하면서 끝인사를 붙여 마무리 하였다. 이번에 가는 보자기 속에 봉한 편지는 집안 아저씨의 부탁이니 종씨(從氏)께 전해주기 바란다는 추신이 붙어 있다.
이기중(李沂中)은 본관이 광주(廣州), 자가 숙정(叔精), 호가 매호이다. 1741년(영조 17)에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감찰, 예조좌랑, 해운판관(海運判官) 등을 역임하였다.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매원리에 살았다.
1차 작성자 : 정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