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4년 1월 7일에 呂文周가 趙生員에게, 천연두를 겪고 있는 근황을 전하면서 錫孫의 혼례 및 慶科와 廷試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는 편지
1754년 1월 7일에 呂文周가 趙生員에게, 천연두를 겪고 있는 근황을 전하면서 錫孫의 혼례 및 慶科와 廷試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는 편지이다.
새해를 맞아 사모하던 중에 편지를 받아 가슴이 후련하였고, 새해에 형이 큰 복을 받고 여러 식구들도 만복을 누린다고 하니 축하를 한다고 첫인사를 하였다. 자신은 72세가 되니 사는 것이 더욱 지루하고 묵은 병은 더욱 심해지니 감회가 더욱 새로워 견디기 어렵다고 하였다. 또 사는 곳이 매우 궁벽하여 천연두가 침범한 적이 없었는데 뜻밖에 천연두가 발생하여 세 아들이 일시에 피하여 나가고 늙고 병든 이만 빈집에 있으니 근심스럽다고 근황을 전했다. 게다가 천연두가 요원의 불길 같이 성하여 피신할 곳이 없을 것 같아 더욱 두려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하였다.
錫孫의 혼례를 물린다는 소식을 들으니 서운하고, 慶科가 열린다니 생질들을 위해 다행이지만 廷試 날짜를 고쳐 정했다고 하는데 아이들 장난을 면하지 못하니 가소로워 탄식할 만하다고 하였다. 함씨(조카) 진사가 방문 한다는 말을 전해 듣고 기다렸는데 오지 않으니 한탄스럽다고 하면서 끝인사를 붙여 마무리 하였다.
발신자 呂文周(1683~1767)의 본관은 星山, 호는 菊窩이다. 일찍이 문학에 뛰어났고, 계모에게 효성이 지극하였다. 양사당을 중수하여 학풍을 진작시켰으며, 국내 명승지는 두루 편력하였고, 작고 후 동지중추부사에 증직되었다.
『옛편지 낱말사전』, 하영휘, 돌베개, 2011.12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12
1차 작성자 : 정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