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9년 1월 9일에 아들 趙錫愚가 돌아간 뒤의 안부와 어머니의 병세에 대하여 물으면서 타고 돌아갈 말을 보내 달라고 아버지 趙時經에게 쓴 편지.
1749년 1월 9일에 아들 趙錫愚가 돌아간 뒤의 안부와 어머니의 병세에 대하여 물으면서 타고 돌아갈 말을 보내 달라고 아버지 趙時經에게 쓴 편지이다.
문에서 기다리는 것이 下情의 마땅한 바이나 이곳의 인사도 그만 둘 수 없는 것이니 감히 지나쳐 온 죄를 어찌 말하겠느냐고 첫인사를 하였다. 어제 행차는 어지러움은 없었고 돌아가신 체후의 기운은 어떠하며, 어머니 목의 통증이 재발하는 조짐이 있다는데 밤사이 어떠한지 물었다. 혹 전염병이 돌아 우연히 걸린 것인지 궁금해 하며 매우 염려가 된다고 하였다. 자신은 우선 예전대로 객지에서 지내나 主家의 우환이 비록 조금 나았다고 하나 숨이 매우 가늘어져 매우 걱정이라고 알렸다. 즉시 돌아가 뵈어야 하나 말이 없으니 모레쯤 내려 보내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아랫마을에 뜻밖의 초상은 참혹하여 차마 다 말할 수 없으며, 동래부사가 오늘내일 본 읍에 온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끝인사를 붙여 마무리하였다.
발신자 조석우(1721~1760)의 본관은 豊壤, 자는 景顔, 호는 存省齋이다. 1754년(영조 30) 증광문과에 올라 승문원 권지정자에 제수되었다. 이후 승문원 권지정자에 제수되었다. 이후 승정원 주서‧성균관 전적‧병조좌랑을 거쳤다. 평안도 도사에 임명되자 나아가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하도낙서와 기삼백, 일월도수 등에 정통하였고, 단군에서 고려의 역사까지 우리나라 역사에 해박했다.
『옛편지 낱말사전』, 하영휘, 돌베개, 2011.12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12
1차 작성자 : 정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