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9년 7월 3일에 趙錫愚가 그믐 전에 내려가지 못하게 된 사정과 같이 공부하는 종반들의 근황을 아버지 趙時經에게 전하는 편지.
1749년 7월 3일에 趙錫愚가 그믐 전에 내려가지 못하게 된 사정과 같이 공부하는 종반들의 근황을 아버지 趙時經에게 전하는 편지이다.
부모님의 체후가 어떠한지 궁금해 하면서 탈이 없다는 자신의 근황을 알렸다. 그믐 전에 가서 뵐 계획이었으나 上庵 노인과 친구들이 만류하였고 큰 비를 만나 강물이 갑자기 불어나 줄어들기를 기다리느라 이제야 출발한다고 알렸다. 넷째 仲父의 기일이 며칠 남지 않았지만 가서 참여하지 못한 허전한 마음을 어찌 말로 다하겠느냐고 하였다. 노 아우는 이미 시 3수를 지었는데 좋은 곳이 매우 많아 다행이며, 喆 아우는 오지 않았는데 기일이 있는 달이어서 바깥일에 뜻이 없으니 그 정성은 참으로 고치기 어렵지만 선비가 양식을 싸서 길을 떠나는 도리에 있어서는 구애되는 것이 있는 것 같아 개탄을 금할 수 없다고 하였다.
발신자 조석우(1721~1760)의 본관은 豊壤, 자는 景顔, 호는 存省齋이다. 1754년(영조 30) 증광문과에 올라 승문원 권지정자에 제수되었다. 이후 승정원 주서‧성균관 전적‧병조좌랑을 거쳤다. 평안도 도사에 임명되자 나아가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하도낙서와 기삼백, 일월도수 등에 정통하였고, 단군에서 고려의 역사까지 우리나라 역사에 해박했다.
『옛편지 낱말사전』, 하영휘, 돌베개, 2011.12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12
1차 작성자 : 정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