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8년 9월 20일에 權萬이 부탁한 일에 대한 자신의 입장과 생각을 알리고, 수세를 거두는 일과 黔澗 趙靖 선조의 서적을 찾는 일에 대한 형편을 趙院長에게 알리는 편지.
1748년 9월 20일에 權萬이 부탁한 일에 대한 자신의 입장과 생각을 알리고, 수세를 거두는 일과 黔澗 趙靖 선조의 서적을 찾는 일에 대한 형편을 趙院長에게 알리는 편지이다.
연래에 외숙[渭陽]의 거듭된 상척에 조문하지 못한 것을 자책하고, 편지를 받고 조섭하는 생활이 편하고 중씨의 병도 크게 더해지지 않았다니 기쁘다고 하였다. 자신은 쓸데없는 늙은이가 되었고 집안에 남은 곡식이 없지만 계책이 없으니 어쩌느냐고 하소연하면서 벼슬을 그만두고 싶다는 가형의 소식을 알렸다. 부탁한 일에 대한 자신의 입장과 생각을 알리면서 회시해 주기를 바랐다. 收貰에 관한 일은 엄히 타일렀지만 전의 예대로 거두기 어려운 사정을 알렸다. 黔澗 선조의 서적이 청도 밀양 등지의 고가에 남은 것이 거의 없지만 형과 함께 마음을 다해 찾아볼 뿐이라고 하였다.
발신자인 권만(1688~1749)의 본관은 安東, 자는 一甫, 호는 江左이다. 1721년(경종 1)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725년(영조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28년 正字로 재직시 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의병장 柳升鉉을 도와서 반역을 꾀한 무리들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다. 1746년 병조좌랑으로 문과중시에 을과로 급제하였고, 병조정랑이 되었다. 정조 때 창의의 공으로 이조참의에 추증되었다. 저서에 『강좌집』이 있다.
『옛편지 낱말사전』, 하영휘, 돌베개, 2011.12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12
1차 작성자 : 정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