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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8년 권만(權萬)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1+KSM-XF.1748.4792-20090831.0230257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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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권만, 조○○
작성지역 경상북도 봉화군
작성시기 1748
형태사항 크기: 27.4 X 50.7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상주 승곡 풍양조씨 입재공파종택 /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승곡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748년 권만(權萬) 서간(書簡)
1743년 9월 20일에 권만이 부탁한 일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근래 거듭 문상을 가지 못한 일에 대한 죄송한 마음과 부탁한 일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전했다. 또한 세(貰)를 예전처럼 거두기 어려운 사정과 검간(黔澗) 선조의 서적을 찾는 일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옛편지 낱말사전』, 하영휘, 돌베개, 2011.12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12
1차 작성자 : 서진영

상세정보

1748년 9월 20일에 權萬이 부탁한 일에 대한 자신의 입장과 생각을 알리고, 수세를 거두는 일과 黔澗 趙靖 선조의 서적을 찾는 일에 대한 형편을 趙院長에게 알리는 편지.
1748년 9월 20일에 權萬이 부탁한 일에 대한 자신의 입장과 생각을 알리고, 수세를 거두는 일과 黔澗 趙靖 선조의 서적을 찾는 일에 대한 형편을 趙院長에게 알리는 편지이다.
연래에 외숙[渭陽]의 거듭된 상척에 조문하지 못한 것을 자책하고, 편지를 받고 조섭하는 생활이 편하고 중씨의 병도 크게 더해지지 않았다니 기쁘다고 하였다. 자신은 쓸데없는 늙은이가 되었고 집안에 남은 곡식이 없지만 계책이 없으니 어쩌느냐고 하소연하면서 벼슬을 그만두고 싶다는 가형의 소식을 알렸다. 부탁한 일에 대한 자신의 입장과 생각을 알리면서 회시해 주기를 바랐다. 收貰에 관한 일은 엄히 타일렀지만 전의 예대로 거두기 어려운 사정을 알렸다. 黔澗 선조의 서적이 청도 밀양 등지의 고가에 남은 것이 거의 없지만 형과 함께 마음을 다해 찾아볼 뿐이라고 하였다.
발신자인 권만(1688~1749)의 본관은 安東, 자는 一甫, 호는 江左이다. 1721년(경종 1)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725년(영조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28正字로 재직시 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의병장 柳升鉉을 도와서 반역을 꾀한 무리들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다. 1746병조좌랑으로 문과중시에 을과로 급제하였고, 병조정랑이 되었다. 정조 때 창의의 공으로 이조참의에 추증되었다. 저서에 『강좌집』이 있다.
『옛편지 낱말사전』, 하영휘, 돌베개, 2011.12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12
1차 작성자 : 정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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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748년 권만(權萬) 서간(書簡)

院長 執事。
兄主前 謹拜射狀上。
奉違
顔範。積有年所。年來渭陽喪威又稠沓。
合有委進弔問之道。路遠力綿。迄未之
遂。居然各家筵几。次第告撤。尋常歉訟。
際此辱札遠至。喫一欣感。仍伏審
調履起居平安。仲氏兄主大病餘。不至大愆。
謹甫不遂之症頗感。眼患亦不至添加。種種
慰幸深矣。繞浦鵂巖諸處。雖無病故。
三百六十日。舞非憂患。豈可鎰平報降心也。
再從弟。衰象節次。倈見知作無用老漢。家事又
旁落無餘。實無庇有百口之策。勢也奈何。
家兄白首吏役。已非可堪者。重以接應大賓之
餘。積債如山。無以塡充。且我眷無非老弱。
傷於水土。疾病隨續。以此以彼。實無久意。擬
以此月內。爲盡室北還計。而旣非遞歸之官。則
凡百資力。皆是自備。姑未知必歸否也。
俯托事。以年條言之。則可以優優。而弟旣窮居。
欲藉衆力。而衆力又不從心。是不過民窮財盡。
斂散非時之致也。無論厥數之多少。依
敎送還。以爲伐石之一助。而不但契議不齊。
所謂契物。俱是田土。分析各執之前。着手無
地。且牀石則弟已伐取。而石所是三十里絶險
之處。有資糧然後。可以運致。而計無奈何。欲一奉議於
座下。竝一兩年貰穀及契物。爲措置碣石之地。而塡刻運
竪。有非零瑣之資。所可了當。自承此托。寢食不安。弟亦有
事未成。而恐自溘至之慮也。早晩商量回示。伏望。收貰事。
非不嚴勅。而今
年又未免凶。
芿叱石處。復
舊例收送無
路。所謂丙先者。
身死有年。其妻
無依丐食。空言
無施。可歎。所
捧之數。待收煞。
當於書末塡告
耳。
黔澗先祖書籍。
意或遺落於淸
密等地古家。而兵
燹之後。人無定居。
如佔畢齋騎
牛子三足堂朴菊
潭申松溪諸先生
後孫。多在淸察。而無
一古蹟。其他下邑。大
抵皆然。亦安保其
必得也。然當以此
意。提及家兄。弟亦
早晩南下。盡心搜
訪耳。頃有人自商
善倈言。武夫兄
主連駐鵂巖。所以
供奉之道。大勝於
前云。不得欣慰。餘
適擾。不宣。伏惟。
下察。謹謝狀上。
戊辰 九月 二十日。再從弟 權萬 拜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