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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5년 권만(權萬)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1+KSM-XF.1745.4725-20090831.023025700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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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권만
작성지역 경상북도 상주시
작성시기 1745
형태사항 크기: 30.7 X 46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상주 승곡 풍양조씨 입재공파종택 /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승곡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745년 권만(權萬) 서간(書簡)
1745년 2월, 권만이 선영 근처의 토지 매입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전하기 위해 조생원 공주댁에 보낸 편지이다. 토지의 수환은 2, 3섬에 이르렀고 값은 100여 金에 내려가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지금 귀노와 서숙이 가서 보니 토지의 수확은 몇 10 말[斗]에 지나지 않았고 값은 수 30 금에 지나지 않아 마음이 편치 않다고 하면서 뒷날 어찌 마주하여 실제를 살필 길이 없겠느냐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선주

상세정보

1745년 2월 27일, 內再從弟 權萬이 先塋 근처의 토지 매입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전하기 위해 趙生員 公州宅에 보낸 편지
1745년 2월 27일에 內再從弟 權萬이 先塋 근처의 토지 매입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전하기 위해 趙生員 公州宅에 보낸 편지이다.
하인이 와서 편지를 받고 위안이 되었으며 병환과 초상 및 우환의 소식에 걱정과 탄식을 했다고 첫 인사를 하였다. 達田의 밭에 관한 일은 양쪽 선영을 수호하는 방법에 지나지 않아 털끝만큼도 희롱할 뜻이 없는데 편지를 보고 괴이함과 한스러움을 이기지 못했다고 하였다. 자신은 이 밭에 대하여 산소에서 멀지 않은 땅이고 외가에서 판 토지여서 차마 남의 손에 넘길 수 없으니, 貴奴가 오고 가며 값을 깎아 오기를 바랐는데 지금 값이 어긋나 그대로 값을 치르기가 어렵다고 하였다. 자신이 전에 듣기에는 토지의 수환은 2, 3섬에 이르렀고 값은 100여 金에 내려가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지금 귀노와 庶叔이 가서 보니 토지의 수확은 몇 10 말[斗]에 지나지 않았고 값은 수 30 금에 지나지 않아 마음이 편치 않다고 하면서 뒷날 어찌 마주하여 실제를 살필 길이 없겠느냐고 하였다.
이 토지의 값은 35貫으로 決折하였으나 자신의 집에는 한 푼도 없어 겨우 30관을 빌려서 보내며 5관은 곧 갖추어 보내겠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추신이 붙어 있다.
발급인 은 江左 權萬(1688~1749)으로 추정하였다. 권만의 부친은 權斗紘이고 모친은 풍양조씨 趙啓胤의 딸인데, 수취인이 조계윤 종형제의 아들이라면 본문에 언급한 '內再從-外再從' 관계가 될 수 있다. 권만은 본관은 安東, 자는 一甫, 호는 江左이며 密庵 李栽의 문인이다. 霽山 金聖鐸, 大山 李象靖 등과 교유하였다.
1차 작성자 : 정재구

이미지

원문 텍스트

1745년 권만(權萬) 서간(書簡)

趙生員 公州宅。[手決]▣▣(謹封)。
▣…▣。
【此書不可失也。】
貴奴至。伏承
耑復。披慰若對。但審
叔主憂患更發。體度欠和。不勝▣(驚)▣
之至。梨川庶祖喪報。亦極悲慘。其▣(他)
憂患之稠疊。恰似此中。爲之悶歎▣。
達田田事。不過爲兩處先塋守護之道。略▣
鄙見。何當有一毫玩弄之意。而下示如▣(此)。
不勝恠恨。弟於此田。不宜更有干犯。而山所
不遠之地。外家出賣之土。不忍歸之他人▣(則)
幸。使貴奴往復中。折價而徠。今方貸價
圖買。而價切緯繣。以難準數出給事。
近占悋戰心不快何者。弟前之所聞。土
不下數三石落。價不下百餘金。今使
貴奴偕庶叔往見。則土不過彼年數十斗。
價不過數三十金。與昔年書辭中
說話。大相遲延。此弟所以不快於心。而息▣
在彼。他日豈無相對審實之道耶。
餘不宣。伏惟
下察。拜謝上狀。
乙丑 二月 卄七日。內再從弟 頓。

此田之價。以三十五貫決折。而弟家無一文。見
在僅僅借貸三十貫以送。其五貫從當備
送。然以山明處。只捧六貫半。斥賣之時論之。
卽幾至五同甲。不亦利乎。好笑好笑。
弟亦非年利者。而今爲先瑩。發此等說話。
事近駔儈。自顧慚負。此紙覽后付丙。

極忙且撓。
叔主前。又不能拜書。
罪恨罪恨。梨川祖亦
不能書慰。極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