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1년 11월 19일에 從弟 趙寅經이 아우에게 宗會契의 도유사를 맡겼는데 여러 가지 어려운 사정을 살펴 다른 유사를 찾아달라고 부탁하면서, 고지기의 私耕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며 오작당에 보낸 편지.
1741년 11월 19일에 趙寅經이 아우에게 宗會契의 도유사를 맡겼는데 여러 가지 어려운 사정을 살펴 다른 유사를 찾아달라고 부탁하면서, 고지기의 私耕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며 오작당에 보낸 편지이다.
흑석에서 만나지 못한 것은 지금까지 서운한데, 추운 겨울의 생활이 계절에 따라 신명이 호위하리라 생각한다고 첫인사를 하였다. 어제 남장사로 간 행차는 밤이 되어서야 도착했을 것 같아 염려가 된다고 하였다. 자신은 아내의 병이 다시 발작하여 수십 일이 지났는데 병세가 위태롭고 그 밖의 걱정거리가 많아 사는 것이 괴롭지만 어찌하느냐고 하소연하였다. 중형은 주발과 관영 같은데 술병까지 얻어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 망발을 하여 듣는 이를 놀라게 하였으니 매우 통탄스러운데 國賓과 熙叔 등이 혹 용서하겠느냐고 하였다. 宗會契의 도유사를 또 아우에게 맡겼는데 종족들의 친목을 돈독하게 하는 일에 감히 그 수고로움을 사양할 수 없지만, 아우가 처한 딱한 사정을 조목조목 열거하면서 형세를 헤아려 따로 유사를 정해 盃酒를 마련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였다. 고지기에게 주는 私耕에 관한 조목은 지나친 듯한데 형의 소견은 어떠한지 물으면서, 자신의 생각으로는 고지기는 일 년에 한두 번 회문을 보내고 하루 이틀 제기를 운반하러 두 곳에 갈 뿐인데 五斗畓과 五斗田을 주는 것은 너무 지나치지 않느냐는 견해를 제기하였다. 다만 이것은 여러 종인들이 헤아려 처리할 일이니 많고 적음을 말하겠느냐고 하면서 끝인사를 붙여 마무리 하였다.
『옛편지 낱말사전』, 하영휘, 돌베개, 2011.12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12
1차 작성자 : 정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