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7년 12월 1일 查弟 鄭葵陽이 혼례가 평온하게 이루어졌고 신랑도 마음에 들지만 난향을 소홀하게 준비하여 부끄럽고 한스럽다는 뜻을 趙生員에게 전하는 편지.
1717년 12월 1일 查弟 鄭葵陽이 혼례가 평온하게 이루어졌고 신랑도 마음에 들지만 난향을 소홀하게 준비하여 부끄럽고 한스럽다는 뜻을 趙生員에게 전하는 편지이다.
신부가 행차하는 가운데 형의 생활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되어 위안이 된다고 첫인사를 하였다. 혼례의 일은 날씨도 좋고 평온하게 이루어졌으며 신랑도 재주가 뛰어나 바라던 바에 맞아 다행함을 말로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자신은 여러 날 농장에 있는데 온갖 병이 침범하여 창문 틈을 꼭꼭 막고 곡기를 끊고 누워 있으니 스스로 가련한들 어쩌겠느냐고 하였다. 풀보기 상 음식[餪饗]을 오로지하지 못했다며 이는 세속에서 숭상하지 바이지만 궁한 살림이 텅 비어 보잘 것 없이 하도록 허락한 것 같아 부끄럽고 한탄스럽다고 하면서 일상적인 끝인사를 덧붙였다.
발신자 정규양(1667~1732)의 본관은 烏川, 자는 叔向, 호는 篪叟로 영천 출신이다. 아버지는 생원 碩胄이며, 어머니는 의성김씨로 邦烈의 딸이다. 종조부 時衍과 李玄逸의 문하에서 형 萬陽과 함께 수학하였다.
『옛편지 낱말사전』, 하영휘, 돌베개, 2011.12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12
1차 작성자 : 정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