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5년 1월 22일 趙瀣가 주변 가족들의 전염병에 대한 상황을 전하면서 옥성서원의 사직단자는 여론을 보아 끝내 저버릴 수 없을 것 같다는 자신의 의견을 趙院長에게 개진하는 편지.
1705년 1월 22일 趙瀣가 주변 가족들의 전염병에 대한 상황을 전하면서 옥성서원의 사직단자는 여론을 보아 끝내 저버릴 수 없을 것 같다는 자신의 의견을 趙院長에게 개진하는 편지이다.
인편이 있으면 늘 편지를 보내 사람을 감동하게 하였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한결같이 답장을 빠뜨려 매우 부끄럽고 탄식할 만하다고 하였다. 자신은 예전처럼 병구덩이에서 지내지만 새봄에 느끼는 회포가 사람의 남은 창자를 녹이니 어찌하느냐고 하였다. 杯川 서숙모의 죽음과 종질의 병세 및 조카 畬 내외의 전염병의 상황 등을 알렸다.
지난번 옥성서원의 사직 단자는 혐의스러워 감히 돌려보내지 않았는데 여론을 끝내 저버릴 수 없을 것 같으니 그 진퇴를 어찌하겠느냐고 물었다. 서원의 돌아가는 상황은 들어 알 것이므로 언급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끝 인사를 붙여 마무리 하였다.
발신자 조해는 본관이 豊壤, 호는 疎軒이며 통덕랑을 지냈다. 옥성서원은 경상북도 상주시 외남면 신상리에 있었던 서원이다. 1631년(인조 9)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金得培, 申潛, 金範, 李㙉, 李埈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하였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옛편지 낱말사전』, 하영휘, 돌베개, 2011.12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12
1차 작성자 : 정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