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3년 5월 23일에 鄭錫三이 종이를 보내주었지만 병으로 누워 있느라 편지로 대신 趙生員에게 감사함을 전하는 편지.
1703년 5월 23일에 鄭錫三이 종이를 보내주었지만 병으로 누워 있느라 편지로 대신 趙生員에게 감사함을 전하는 편지이다.
종질에게 온 편지를 보고 장마 더위에 기체가 편안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위안이 되며, 자신은 예전처럼 어버이를 모신다고 첫인사를 하였다. 宗家의 장례는 愚山으로 정하였으나 끝내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내일의 발인도 어긋나게 되었으니 슬픈 탄식이 어떻겠느냐고 하였다. 보내준 종이 묵음은 말할 수 없이 감사하다고 하였다. 상인으로 산소를 구하던 나머지에 또 뜻밖의 경계를 당하여 병이 심해져 누워있기 때문에 편지로 대신 사례한다며 끝인사를 붙여 마무리 하였다.
발신자 정석삼(1690~1729)의 본관은 東萊, 자는 命汝이다. 1711년(숙종 37)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으나 會講시 그의 이름이 누설되었다는 수찬 洪重休의 상소에 의하여 3년간 관직에 임용되지 못하였다. 1717년 좌랑을 시작으로 도승지, 호조참판, 예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탕평책의 한 방법으로 銓選의 바른 시행을 논하기도 하였으며, 謝恩副使로 청나라에 파견되기도 하였다. 1772년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옛편지 낱말사전』, 하영휘, 돌베개, 2011.12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12
1차 작성자 : 정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