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2년 10월 13일에 孫萬雄이 자신이 마련하는 술자리에 여러 노형들이 참석할 수 없게 되어 한탄스럽다는 마음을 전하면서, 자신의 사모를 빌려준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미상의 수신자에게 전하는 편지.
1702년 10월 13일에 孫萬雄이 자신이 마련하는 술자리에 여러 노형들이 참석할 수 없게 되어 한탄스럽다는 마음을 전하면서, 자신의 사모를 빌려준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미상의 수신자에게 전하는 편지이다.
지난번에는 찾아 갔다가 바쁘게 하직하고 돌아와 실로 서운했는데 형도 반드시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첫인사를 하였다. 보내준 편지를 받고 생활이 편안하다는 것을 알아 매우 위안이 되며, 손자의 신행도 맑은 날을 만나게 된 것을 축하하였다. 자신의 집에서 내일 술자리를 마련하는데 수신자와 柯谷과 繞浦의 여러 노형들이 모두 유고가 있어서 참석할 수 없게 되어 한탄스럽다고 하였다.
꿩을 보내 준 것에 대하여 감사하면서 끝인사를 붙여 마무리 하였다. 아이들이 쓰던 모자는 서울에 있는데 도착하지 않아 자신의 사모가 같은 것이 있어서 먼저 약속을 하고는 뒤에 후회를 하였는데, 아마도 군속한 걱정이 있을 것 같아 매우 미안하다는 추신이 붙어 있다.
발신자 孫萬雄(1643∼1712)의 본관은 경주, 자는 敵萬, 호는 野村이다. 1669년 식년시 문과에 급제하여 공조·예조·형조의 좌랑을 지냈다.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집권한 후 복귀한 후 공주·나주·괴산·청주의 목사를 거쳐 1692년(숙종 18) 동래 부사로 부임하였다. 저서로 『야촌선생문집』이 있으며, 1784년(정조 8) 경상북도 상주시 외서면 관동리 龜湖書院에 배향되었다.
『옛편지 낱말사전』, 하영휘, 돌베개, 2011.12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12
1차 작성자 : 정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