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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6년 이보영(李葆英)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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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보영, 조○○
작성지역 경상북도 상주시
작성시기 1696
형태사항 크기: 34.8 X 32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상주 승곡 풍양조씨 입재공파종택 /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승곡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696년 이보영(李葆英) 서간(書簡)
1696년 7월 25일에 이보영(李葆英)이 조 원장에게 보낸 편지이다. 뜻밖에 상대의 편지를 받고 안부를 확인하였는데, 옥천(沃川)쪽의 상사(喪事) 소식은 매우 놀랐다고 하였다. 상대가 부탁한 조(趙) 전량관(典糧官)에 관한 어떠한 일은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해결 해 주지 못했다고 알렸다.
1차 작성자 : 김동현

상세정보

1696년 7월 25일, 李葆英이 조 전량이 당시 일의 형세 때문에 가르침에 부응하지 못한 점을 헤아려 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 趙院長에게 보낸 편지
1696년 7월 25일에 李葆英이 조 전량이 당시 일의 형세 때문에 가르침에 부응하지 못한 점을 헤아려 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 趙院長에게 보낸 편지이다.
뜻밖에 편지를 받고 편하다는 것을 알아 위안이 되었으니 沃川의 상사는 놀라움을 금하지 못하겠는데 수신자의 심정이야 어떠하겠느냐 염려하면서, 숙환으로 가서 문후할 계획을 하지 못해 탄식할 뿐이라고 첫 인사를 하였다. 趙典糧에 관한 일은 도움이 되는 말이 있다고 들었으나 큰 제사가 닥쳤을 뿐만 아니라, 그 임무에 나아가기 어렵고 또 당시 일의 형세가 스스로 그만둘 수 없는 것이 있어, 이 때문에 정사에 나아갈 수 없어서 형의 가르침에 부응할 수 없었으니, 해량하는 것이 어떠하냐고 하였다. 한 번 찾아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려고 계획했으나 전에 앓던 손발의 마비 증세가 심하고 근처에 전염병이 돌아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사정을 알리면서, 일상적인 끝인사를 붙여 마무리 하였다.
李葆英(1641~?)의 이력은 자세하지 않으나, 『司馬榜目』이나 『商山誌』 등을 통해 몇 가지 정보를 알 수 있다. 본관은 新平, 자는 秀伯이며, 부친은 , 아우는 葆馨, 葆禎이 있다. 생년은 1641년으로 肅宗 4년(1678) 戊午에 增廣試 進士 2등으로 합격한 이력이 있다. 『淸臺日記』1710년 7월 2일 기사에 權相一(1679~1759)이 이보영을 방문한 기록이 있는데, "李上舍葆英"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외에도 이 문건이 풍양조씨 오작당 소장 문건임을 감안하자면, 黔澗 趙靖의 손자인 慕庵 趙稜(1607∼1683)의 문집 『慕庵集』에는 그가 쓴 만사가 실려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고, 조정의 아들인 蕉隱 趙基遠(1574~1662)의 配位가 新平李氏로 집안끼리 혼반관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수취인 정보로 "趙院長"을 적고 있고, 이보영은 자신을 '病弟'로 표현하였는데, 이를 통해 그와 연배가 비슷한 오작당 문중의 인물로 眉叟 許穆의 문인이자 조기원의 손자인 竹坡 趙元胤(1633~1688), 容膝軒 趙振胤(1635~1709)과 같은 인물들이 있지만 정확한 수취인은 알 수 없다.
1차 작성자 : 정재구

이미지

원문 텍스트

1696년 이보영(李葆英) 서간(書簡)

趙院長 下史。[手決]謹封。
謂外伏承
惠札。就審
兄候愼暑萬重。稍慰阻鬱之懷。而第
沃川喪事。實是千萬念慮之外。其在
瞻聆。旣不勝驚愕。則
兄之心事。當作何如懷耶。奉慮萬萬。
而宿患沉痼。無計就候。只自欠慨而已。
趙典糧事。曾聞有益說話。而不但
大祭迫近。難進其任。且聞伊時事勢。
有不能自已者。則亦不可以此進政之。玆
不得奉副
兄敎。須賜諒見正。如何如何。一者
委進。作聯枕穩展者。計非不深。
而前患痿痺之症。反復特甚。
近地書有病。不得隨意。況稍遠地耶。
有意未就。常切慨然。餘萬病艸。
不宣。伏惟
兄下照。拜謝狀上。
丙子 七月 卄五日。病弟 葆英 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