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2년 1월 3일에 孫萬雄이 백형 내외의 초상을 위로하면서, 이모의 상 때문에 노모가 편치 않아 휴가를 내어 왔으나 피로하여 보름쯤에 위문을 가겠다는 뜻을 미상의 수신자에게 알리는 편지.
1692년 1월 3일에 孫萬雄이 백형 내외의 초상을 위로하면서, 이모의 상 때문에 노모가 편치 않아 휴가를 내어 왔으나 피로하여 보름쯤에 위문을 가겠다는 뜻을 미상의 수신자에게 알리는 편지이다.
집에 돌아오니 형의 댁과 가까워 그리운 생각이 평소보다 갑절인데 뜻밖에 편지가 문득 이르니 놀랍고 감사함을 어찌 다하겠느냐고 첫인사를 하였다. 백형 내외의 상은 슬픔과 아픔을 어찌 말로 다하겠으며, 덕이 있는 가문에 재앙과 근심이 어찌 이런 지경에 이르느냐고 마음아파 하였다.
자신은 지난번 이모의 상을 당했는데 노모가 이 일로 슬퍼하느라 편하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갑작스럽게 휴가를 내어 그믐날 도착하였으나 질척거리는 길을 달려오느라 피곤하여 움직이기 어려워 보름쯤에 가서 위문을 할 수 있을 뿐이라고 하였다.
많은 이야기는 마주 대하지 않고는 다 이야기 할 수 없으며 風亭의 편지는 내일 모레쯤 인편이 있으면 전하겠다며 끝인사를 붙여 마무리 하였다. 형이 편지를 받고 매우 감사하지만 오래지 않아 나아가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므로 우선 답장을 쓰지 않는다는 추신이 붙어 있다.
발신자 손만웅(1643~1712)의 본관은 慶州, 자는 敵萬, 호는 野村이다. 이현일의 문인으로 1669년 진사에 합격하고, 같은 해 식년시 을과로 문과에 급제하여 경주부윤을 지냈다.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龜湖書院에 제향 되었다.
『옛편지 낱말사전』, 하영휘, 돌베개, 2011.12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12
1차 작성자 : 정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