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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9년 손만웅(孫萬雄)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1+KSM-XF.1689.0000-20090831.023025700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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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손만웅
작성시기 1689
형태사항 크기: 29.3 X 45.1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상주 승곡 풍양조씨 입재공파종택 /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승곡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689년 손만웅(孫萬雄) 서간(書簡)
1689년 윤월 28일에 손만웅이 쓴 편지이다. 본인이 이번에 나주에 부임하게 되어 상대방을 보려고 했으나 배가 없고 물이 깊어 뜻을 이루지 못하여 허전한 마음에 안부를 전한다고 했다. 추신에는 상대방이 말한 책은 공암서원에 그 판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고, 상대방이 보낸 책을 만드는 종이는 중간에 잃어버린 것 같은데 나주에 부임한 뒤에 그것을 갚겠다는 내용을 적었다.
『옛편지 낱말사전』, 하영휘, 돌베개, 2011.12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12
1차 작성자 : 김명자

상세정보

1689년 윤월 28일에 孫萬雄이 작별하러 와 준 것에 감사하고 찾아가지 못한 사정을 전하면서 冊紙는 부임 후에 갚겠다는 뜻을 미상의 수신자에게 전하는 편지.
1689년 윤월 28일에 孫萬雄이 작별하러 와 준 것에 감사하고 찾아가지 못한 사정을 전하면서 冊紙는 부임 후에 갚겠다는 뜻을 미상의 수신자에게 전하는 편지이다.
술을 차고 찾아와 작별을 해 준 것에 감사하였다. 자신은 이번에 錦城[나주]으로 부임하게 되어 형을 보지 않을 수 없어 성묘 길에 들리려고 하였으나 배가 없고 물이 깊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고 사정을 전했다. 지금 작별하면 더욱 멀어지게 되어 서운하고 허전하다고 하면서 그리움을 견디지 못해 사람을 보내 대신 안부를 전한다고 하였다. 말씀하신 책은 孔巖書院에 그 판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고, 가형에게 들으니 冊紙는 형이 있는 곳에서 봉하여 이곳에 도착하면 湖幕으로 보내려고 했다는데 보지 못했으니 아마 잃어버린 것 같아 탄식할만하다며 금성으로 부임한 뒤에 갚겠다는 추신을 덧붙였다.
발신자 손만웅(1643~1712)은 본관이 慶州, 자는 敵萬, 호는 野村이다. 1669년(현종 10) 식년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1671년(현종 12) 오수 찰방에 임명된 이후 1674년(현종 15) 공조·예조·형조의 좌랑을 지냈다. 1680년(숙종 6) 경신대출척으로 서인이 정권을 잡자 고향인 尙州로 낙향하였다가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집권한 후 복귀하였다. 이후 공주·나주·괴산·청주목사를 거쳐 1692년(숙종 18) 동래 부사로 부임하였다. 龜湖書院에 배향되었고, 증손자 손익현이 펴낸 『야촌 선생 문집』이 있다.
『옛편지 낱말사전』, 하영휘, 돌베개, 2011.12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12
1차 작성자 : 정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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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689년 손만웅(孫萬雄) 서간(書簡)

佩壺
枉別。迨用謝感。
雨餘淸和。
兄體况萬珍。弟。閱
月蓮幕。轉得錦
城。初一奉老。南爲遠
別之日。不可不見
兄。故頃於松楸來往
路。丕計歷敍矣。使
岩無船水深。取路飛
鸞。竟未遂忱。厥后。汨沒無隙。未易
抽身。而行期已迫。今無奈何。此別轉濶。
悵缺可云。不堪戀悃。敢此替申。伏惟
兄心照。謹候。不宣。
己巳 閏月 卄八。弟 萬雄 頓。

令胤姪俱安否。就
示冊。孔巖書院。古有其
板。今則已無。且聞家兄
言。則冊紙。封自兄所
到此。轉送湖幕云。而
不得見。想閪失耶。
可歎可歎。赴錦後
當備償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