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9년 윤월 28일에 孫萬雄이 작별하러 와 준 것에 감사하고 찾아가지 못한 사정을 전하면서 冊紙는 부임 후에 갚겠다는 뜻을 미상의 수신자에게 전하는 편지.
1689년 윤월 28일에 孫萬雄이 작별하러 와 준 것에 감사하고 찾아가지 못한 사정을 전하면서 冊紙는 부임 후에 갚겠다는 뜻을 미상의 수신자에게 전하는 편지이다.
술을 차고 찾아와 작별을 해 준 것에 감사하였다. 자신은 이번에 錦城[나주]으로 부임하게 되어 형을 보지 않을 수 없어 성묘 길에 들리려고 하였으나 배가 없고 물이 깊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고 사정을 전했다. 지금 작별하면 더욱 멀어지게 되어 서운하고 허전하다고 하면서 그리움을 견디지 못해 사람을 보내 대신 안부를 전한다고 하였다. 말씀하신 책은 孔巖書院에 그 판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고, 가형에게 들으니 冊紙는 형이 있는 곳에서 봉하여 이곳에 도착하면 湖幕으로 보내려고 했다는데 보지 못했으니 아마 잃어버린 것 같아 탄식할만하다며 금성으로 부임한 뒤에 갚겠다는 추신을 덧붙였다.
발신자 손만웅(1643~1712)은 본관이 慶州, 자는 敵萬, 호는 野村이다. 1669년(현종 10) 식년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1671년(현종 12) 오수 찰방에 임명된 이후 1674년(현종 15) 공조·예조·형조의 좌랑을 지냈다. 1680년(숙종 6) 경신대출척으로 서인이 정권을 잡자 고향인 尙州로 낙향하였다가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집권한 후 복귀하였다. 이후 공주·나주·괴산·청주의 목사를 거쳐 1692년(숙종 18) 동래 부사로 부임하였다. 龜湖書院에 배향되었고, 증손자 손익현이 펴낸 『야촌 선생 문집』이 있다.
『옛편지 낱말사전』, 하영휘, 돌베개, 2011.12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12
1차 작성자 : 정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