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8년 9월 7일, 張是奎가 아이 병의 상태를 알리면서, 보내준 蒲黃과 川魚에 대한 감사와 박하를 구하지 못한 걱정을 전하기 위해 趙生員에게 보내는 편지
1678년 9월 7일에 張是奎가 아이 병의 상태를 알리면서, 보내준 蒲黃과 川魚에 대한 감사와 박하를 구하지 못한 걱정을 전하기 위해 趙生員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집의 아이에게 도착한 편지를 통해 부모님을 모신 생활이 좋다는 것을 알고 매우 위안이 되었으나, 조 서방에게 들으니 환후가 가볍지 않다는 것을 알고 매우 염려가 된다고 하였다. 자신은 아이의 병이 여러 달 낫지 않은 가운데 약을 썼으나 효과가 없으니 다시 무슨 말을 하겠느냐고 하소연하였다. 부들꽃[蒲黃]과 물고기[川魚]는 보내준 대로 도착했는데 긴요하게 쓸 재료여서 매우 고맙고 다행이며, 또 丸劑 가운데 薄荷는 한 근쯤이 필요한데 손에 넣은 것은 겨우 반이어서 걱정이라고 하였다. 집의 아이는 붓을 잡지 못해 답장을 쓰지 못한다는 사정을 말하면서 끝인사를 붙여 마무리 하였다.
발신자 張是奎(1627∼1708)는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順天, 자는 汝常이고, 아버지는 翊이다. 1648년 약관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하여 孝宗의 눈에 들어 宣傳官이 되었다. 1675년 무신 중에서 堂上官으로 등용할 수 있는 사람을 조사하였는데, 30인 중 한 사람으로 선발되었다. 삼도수군통제사와 오위도총부부총관을 지내고, 1702년 여가를 얻어 고향으로 돌아온 뒤로는 벼슬을 사직하여 다시는 관직에 나아가지 아니하고 子姪과 後進들을 가르치면서 유유자적하였다.
1차 작성자 : 정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