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8년 2월 그믐날, 金玧이 상대방의 방문을 청하기 위해 松坡 金輝世에게 보낸 편지.
1678년 2월 그믐날, 金玧이 상대방의 방문을 청하기 위해 松坡 金輝世에게 보낸 편지이다.
김윤은 우선 편지 서두에서 상대방에게 안부를 묻고 있다. 상대방에게 전후 인편으로 여러 번 편지를 받고도 상환을 당한 나머지 인사할 겨를이 없었음을 한스러워하며 봄날이 아직도 차가운데 정무 보시는 상대방의 일상생활이 어떠한지 궁금해 하며 그리움을 전하고 있다. 이어 김윤은 집안의 재앙이 매우 심해서 열흘 동안에 두 번의 상을 거듭 만나 슬퍼하고 아파함이 망극하다며 자신의 상황과 심정을 전하고 있다. 또한 지금 막 산소를 조성하고 있으나 궁가의 범백이 망연하여 할 바를 알지 못하겠다고 전한다. 마지막으로 김윤은 상대방에게 오랫동안 가르침을 받지 못했으니 그리움이 나날이 절실하다며 청명이 멀지 않았는데 혹 휴가를 청해서 우리 마을로 수레를 타고 오실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
光山金氏禮安派譜에 의거하면, 이 편지의 발급자인 김윤(1631~1697)은 자는 伯輝, 본관은 광산이다. 그의 부친은 雪軒 金光述(1606~1644), 조부는 金址(1551~1619), 증조는 養正堂 金富信(1523~1566)이다. 김윤은 수취인에 대해 자신을 '姪'이라고 하며 상대를 '叔主'로 표현하였다. 또한 피봉에 '龍宮衙軒 下執事'라고 기록된 것을 통해 수취인이 용궁 현감을 지낸 이력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위의 단서들과 이 문건이 '광산김씨 설월당' 문중의 문건임을 감안하면 수취인은 雪月堂 金富倫(1531∼1598)의 손자이자 溪巖 金坽(1577∼1641)의 아들인 송파 김휘세(1618~1690)로 추정할 수 있다. 이 양가의 윗대인 김부륜과 김부신은 형제지간이다.
光山金氏禮安派譜�에 의거하면, 김휘세는 자는 應時, 호는 송파, 본관은 광산이다. 遺逸로 천거되어 敎官에 임명된 이후 工曹佐郞‧용궁 현감 등을 역임한 이력이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光山金氏禮安派譜』,
1차 작성자 : 서은주, 2차 작성자 : 김동현